[에세이] 이영희 수필가

편리한 것일수록 더 무모하고 예측불허다. 보이지 않고 별 준비 없이도 나오는 말이나 글로 곤란할 때가 있다.

서울의 문학 잡지사에서 원고 청탁한 책을 보내온 것을 보니, 내용은 맞는데 프로필 난에 OO문학회 회원이 회장으로 표기가 잘못되었다. 확인을 다시 해도 제출 시 맞게 보냈었는데.

잡지사에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했더니 죄송하다며 그냥 웃기만 하는데 정초부터 더 뭐랄 수가 없었다.

그때 친구의 전화가 와서 말에 다쳤다고 했더니 다른 친구가 이 나이에 무슨 승마를 배우냐며 우리 나이에 뼈 다치면 한참 고생한다고 한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넘어지지 말아야 한단다. 세 끼 거르지 말고 꼭 먹되 과식은 하지 말며 이사하지 말고 살던 집에서 그대로 살라는 충고까지 한다. 말이 무모하고 무서운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와전이 되니, 현 회장한테 본의 아니게 미안하게 되었다고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올해 토정비결에 구설수가 있나 조심해야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멍하니 있는데 요즈음 항간에 회자하는 어느 재벌 회장의 "아직은 건강한 그대들에게"라는 편지가 도착했다. 내 주위의 분들과 독자들이 조금 더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옮겨본다.

아프지 않아도 해마다 건강검진을 받아보고,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게.

괴로운 일 있어도 훌훌 털어버리는 법을 배우고, 양보하며 베푸는 삶도 나쁘지 않으니 그리 한번 살아보게나. 피로하지 않아도 휴식할 줄 알고 아무리 바빠도 움직이며 운동하게나. 사람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것은 바로 건강한 몸이라네. 건강에 들인 돈은 계산기로 두드리지 말게나. 건강할 때 있는 돈을 자산이라고 부르지만 아픈 뒤 그대가 쥐고 있는 돈은 그저 유산일 뿐이니. 당신을 대신해 차를 몰거나 돈을 벌어줄 사람은 있지만, 당신의 몸을 대신해 아파줄 사람은 결코 없을 테니.

물건을 잃어버리면 다시 살 수 있어도 하나뿐인 생명은 되찾을 수 없다오.

내가 여기까지 와보니 돈이 무슨 소용 있는가.

무한한 재물의 추구는 나를 그저 탐욕스러운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다네.

내가 한때 당연한 것으로 알고 누렸던 많은 것들.

돈, 권력, 지위, 이제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 뿐.

그러니 전반전을 사는 사람들은 너무 급하고 바쁘게 살지 말고

후반전을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말년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사랑해 보시게.

전반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던 나는 후반전 병마에 패배했지만, 그래도 이 편지를 그대들에게 전할 수 있음에 따뜻한 기쁨을 느낀다네.

다 읽고 나니 언어에 의해 일그러졌던 심사가 조금은 펴졌다. 언어로 다친 마음은 역시 언어로 푸는 게 맞다. 그래서 결자해지라는 사자성어가 생겼나 보다. 몇 년째 누워있는 재벌 회장의 편지가 맞는지,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건강만큼 중요한 게 없는데 우선순위를 잊고 대부분 소홀하지 않는가.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나이 든 세대는 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그래서 쉬지 못하고 자신을 위한 일에 투자하지 못하며 돈을 지키려 애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으면 한 푼 가져갈 수 없고 상속자들 싸움만 시키니 살아서 베푸는 게 현명한 일인데도 말이다.

나이 들수록 집과 환경을 깨끗이 하고(Clean Up) 회의나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며(Show Up), 말하기보다 잘 들어주고(Shut Up) 언제나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하며(Cheer Up), 용모와 의복은 항상 단정히 해서 구질구질하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하고(Dress Up) 지갑은 열어야 하며(Pay Up), 포기할 것은 깨끗이 포기하고 즐겁게 지내야 (Give Up) 품위 있는 인생을 보낼 수 있다는 세븐 업(7-Up)을 생각해 본다. 자신을 사랑하며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는 따뜻한 편지다. 인생의 이정표 같은.


# 약력
▶한맥문학신인상, 충북수필문학회. 한맥문학회원, 청풍문학회장 역임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칡꽃 향기', '정비공'
▶충청북도교육청 방과후학교 지원단장 역임
▶현재 청주시 1인 1책 강사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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