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내 부모 내가 모시는데, 당신이 뭘 안다고 감 놔라 배 놔라 참견이야!' 이런 말은 천여 년 전에도 자존심 강한 집안(派) 간에 권위의 시비로 발단이 되어 누대를 이어서 나름 조상의 빛난 얼을 계승 발전시키느라 후손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시작은 중국 송나라 성리학자 주희(朱熹)가 그때에도 혼란스럽고 다양했던 일상의 예절(冠婚喪祭禮)들을 모아 대중적으로 각자의 형편에 따라 정성껏 예를 드릴 수 있도록 주자가례로 엮어서 두루 적용할 수 있도록 펴낸(禮文) 것이 고려 중기에 한반도로 전달되어 우리식으로 적용되면서부터 가문의 명예로 삼아 줄기차게 지켜져 오고 있다.

주자가례의 근본목적은 사람들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삶에 필요한 행위 규범을 절차를 통해 명분을 높이고, 그들의 삶이 인간다운 삶이라는 자존의식을 갖게 하는 동시에 가족 상호간의 애정과 공경과 결속을 돈독하게 하는 가가례(家家禮)이기에 어느 누구도 각자의 예법에 대하여는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그것도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예(冠婚)보다는 죽은 이에 대한 예(喪祭)에 무게를 두고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여러 가지 명분을 내세워 남의 집안과는 조금이라도 더 낫게 모시려고 방법(格式)의 차별화를 꾀하여 왔다. 지방마다, 성씨별로, 지파별로, 관작에 따라, 적서와 빈부, 과거 선조의 뼈대(班常), 심지어 종교에서도 망자에 대한 불가시의 명분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명분의 갈등은 모시는 격식에서 항렬과 적서와 부녀참가, 진설법에서 조율시이, 홍동백서, 어동육서, 두동미서, 생동숙서, 어육기수, 과곡우수, 치적계적(꿩 대신 닭), 계반개와 삽시와 부복 순서, 좌포우혜, 좌면우병, 건좌습우, 반서갱동, 적전중앙 등의 변화를 주장하는 논리의 설득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면서 상례는 시류 따라 대부분 보편화되고 있지만, 제례의 기제사나 민족 명절인 설과 추석의 차례(茶禮)는 아직도 탈바꿈을 못하고 준비할 때마다 집안 간에도 편의와 간소화로 저마다의 주장이 분분하다. 이 또한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지켜온 내 방식의 간섭에 대한 피해의식의 발로이리라.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이젠 해를 거듭하면서 이런 일들이 허례허식이라며 예 실천의 간소화와 실효성을 내세워 점차로 소득 없는 논쟁이나 잘잘못(是是非非)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숭조를 향한 정성된 마음의 모임이 이렇게 현실과 융합하여 실질적 가치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음은 격식존중세대의 줄어듦과 사영(死靈)에 대한 신뢰도의 큰 폭 하락이 한 몫을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게 되었다.

대를 거듭하며 물려받은 조상의 빛난 얼이 진정으로 명분 쌓기만은 아니었을 것임에도 실속도 없고, 현 시속의 격엔 더더욱 어울리지도 않고, 즐겨서 지키려는 이도 극히 적을 뿐 아니라 그것만이 조상숭례의 길이 아니라면 이제 가가례의 존의로 돌아가 조상숭배의 새로운 문화를 가꿔보자.

꼭 지키고 싶은 가문의 전통은 그대로 이어가자. 그렇지 않다면 돌아가시기 전날 많은 식구들이 모일 수 있는 편리한 시간대에, 주관자의 가정형편을 고려하여,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상충되는 격식은 다 내려놓고서, 그저 조상의 숭고한 정신을 기린다는 마음 하나로 정성을 쌓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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