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최용현 변호사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토건공화국이다. 우리 경제부문에서 토목과 건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대에 육박한다. OECD국가의 평균인 5∼6%보다 훨씬 높고, 대표적 토건국가중 하나인 일본의 10%보다도 2배가량이나 높다. 그 결과 정부의 제조업이나 서민 중심의 각종 경기부양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시민들도 토건부문이 살지 않으면 경기가 좋아졌다고 체감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역대 모든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하여 이것저것 해보다 안 되거나 혹은 목전의 선거나 정권지지율 상승을 위해 결국에는 토건부양책을 꺼내들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은 행보다. 최근 정부에서 전체 23개 사업, 사업비 총액 24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이하 예타) 조사면제 대상사업을 선정 발표했다. 예상했던 대로 모두가 토건이다. 그것도 울산의 산재전문 공공병원, 제주의 공공하수처리시설 현대화와 같은 2∼3개 사업을 제외하면, 모두 고속도로와 철도 건설이다.

예타제도는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되었다. 이전의 무리한 국책사업들로 인한 국가적 낭비의 악습이 재현되지 않아야 한다는 반성적 성찰로 도입된 것이다. 예타에는 비록 정책성, 지역균형발전성 등도 평가항목에 있지만, 기본적으로 경제성, 특히 비용/편익 평가를 중점으로 한다. 그러하기에 예타제도는 경제외적 가치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고, 오히려 발전된 곳에 국책사업이 더 집중되는 폐단도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예타제도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나 경기부양이나 선거 등을 위하여 무리한 국책사업을 남발하여 국가적 낭비, 회복불능의 환경오염 등을 초래했던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예타제도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만약 지역균형발전이나 장기적 국토계획과 같은 이유로 예타를 면제하거나 이에 반하는 정책결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마땅한 충분한 숙려가 있어야 한다.

이번 예타면제 결정에서 정부는 그러한 최소한의 숙려라도 했을까? 단지 지자체의 요구를 동등하게 일괄적으로 수용했을 뿐이라는 것이 보다 진실이 가깝지 않을까? 과거 4대강 사업을 줄기차게 비판하던 지금의 집권여당은 무어라 변명할 수 있을까? 지자체는 촉박한 신청기간내에서 그 사업의 선정이나 우선 순위를 정함에 있어 최소한의 재고라도 하였을까? 충북선철도 고속화 사업 선정은 오직 이시종 지사의 강호축 집착에 전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최용현 변호사
최용현 변호사

이미 국가와 지방에서 내 돈 아닌 국가재정으로 한바탕 벌이는 흥청망청 잔치는 시작되었다. 그보다 더 눈꼴사나운 것도 있다. 전국 모든 지자체들은 막대한 재정을 들여 연일 자신들의 사업선정을 축하하는 프랭카드와 언론광고를 내놓고, 자치단체장들이나 유관기관장들은 각종 행사에서 마치 자신들이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양 으스대기에 바쁘다. 거기에 더하여 우리 지역에서는 이번 발표에서 우리 지역이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고 호들갑을 떤다. 이번 사업선정이 진심으로 축하할 만한 일로 남을지 아니면 향후 국가적 낭비를 초래하고 애물단지로 전락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선정의 결과를 놓고 자치단체장이나 유관기관장들이 으스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남세스럽다. 그들이 으스댈 만큼 이번 선정에 그들이 노고를 보탠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정부의 일방적 시혜로 전국에 일괄적으로 베풀어진 것뿐이다. 그들이 말대로 우리 지역이 최대 수혜를 입은 것인지, 아니면 그런 말을 하는 그들 자신이 최대 수혜를 입은 것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누가 최대 수혜자가 되든 중요치 않다. 다만 4대강 사업이나 전남 영암의 포뮬러원 경주장처럼, 이번 예타면제로 우리와 국가의 미래가 최대 피해자가 되지 않았으면 제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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