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그 마을에서의 하루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꽹가리, 장구, 북, 징 소리를 따라 시골길을 걸어나가는 동안 신명이 절로 솟았다. 십 여분 걸어나가자 팽나무가 보였다. 수령이 삼백년쯤 된다고 하는데 새끼줄로 둘려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한복을 곱게 입으시고 동제를 준비하고 계셨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감동적인 시간을 보낸 다음엔 마을회관으로 돌아왔다.

청주시 옥산면 소로리. 이 마을은 세계 최초로 1만7천 년전의 볍씨가 발견되었다는 곳이다. 그 시기만 보더라도 인류사적인 의미가 깊은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전국 씨앗도서관협의회'의 박영재 대표와 '논살림'의 방미숙 대표를 포함한 회원들, 필자가 속한 '임원경제 사회적 협동조합'의 이사장을 포함한 조합원들이 이 마을의 숨겨진 고고학적인 역사적 가치에 매료되어 찾아왔다. 오춘식 이장님을 비롯한 주민들 모두와 이 마을을 그 가치에 맞도록 가꾸자는 취지에 동의가 되었다. 소로1리 마을과 '임원경제 사회적 협동조합' 간의 업무 협약이 체결된 후 자축 겸 정월대보름 축제를 함께 했다. 주민과 함께 한 축제 행사는 그러나 기대 이상이었다.

회관에 돌아오니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차린 오곡밥이 밥상에 즐비했다. 막걸리를 곁들인 즐거운 식사가 끝나곤 여유롭게 쉰 후에 윷놀이가 벌어졌다. 가족끼리 하곤 하던 것과는 신명의 차원이 달랐다. 넓은 회관 안을 채운 사람들이 왁자하게 노는 사이에 어릴 적에나 느끼곤 하던 시골의 참맛이 와락 와닿았다. 한바탕 윷놀이를 끝내자 날이 어둑해졌다.

꽹가리, 장구, 북, 징 소리가 또다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해질 무렵의 풍물 소리는 느낌이 또 달랐다. 풍물패의 흥겨운 소리를 따라 우리는 긴 시골길을 또 걸어나갔다. 빈 들판에 달집이 밤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이장이 불을 붙였다. 불길은 금방 달집을 살라가며 어둠을 밝혀나갔다. 풍물 소리가 그 속으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흥이 절로 일어나 타오르는 달집 둘레로 춤을 추며 돈다. 불빛에 익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아득한 곳에 닿은 듯 그곳의 온기와 비밀을 머금고 있다. 이 얼마만인가. 아니 나는 어릴 적에 쥐불놀이는 해보았지만 달집 태우기는 본 적이 없다. 소로리는 내가 유년시절에도 체험치 못한 것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물론 이 마을도 옛날과는 다를 것이다. 풀어야 할 현실적 과제들 역시 여느 시골 마을들처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세계화가 풍미한만큼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아 역세계화 곧 지방화의 물결이 일어난지도 오래되었다. 공동체로서의 마을은 그에 대한 최적의 대안일 것이다. 그 좋은 보물이 사라지다시피한 불행한 현실 속에서 공동체로서의 마을 되찾기, 그 고귀한 숨결을 다시 헤아리는 것은 삶과 정치의 우선순위에서 결코 밀릴 일이 아니다. 마을 공동체가 그 고유의 전통적 삶의 무늬로 빛날 때 우리 현대 사회의 병든 부분들을 치유할 길이 생긴다. 마을의 숨은 가치를 발굴해서 그에 기반해 소득을 창출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이 마을 소로리는 그 둘 모두에 적합한 공유 자원들을 가지고 있다. 이미 많이 상실된 농촌적 삶의 원형을 복원, 수용하고 있다는 것은 도시의 소비적 삶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마을 공동체의 문화적 내용을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소로리 볍씨가 인류사적인 성격이니만큼 한 지역이나 우리나라에 한정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 최초의 볍씨라면 그야말로 세계를 위해서도 알권리가 제대로 주어져야 한다. 그 점이 가슴을 안타깝게 물들이는 사이에 마을 주민들이 진심으로 베풀어준 환대, 불 속에 울리는 북소리처럼 가슴을 울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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