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봄까치꽃이 피었다고 지인이 SNS에 올렸다.

잠깐 내린 비에 언 땅이 촉촉이 젖어들었는가보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피었는지도 모를 작은 들꽃이 양지바른 곳에서 피어 있을 테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핀 작고 앙증맞은 꽃이 대견하다.

긴 겨울을 뚫고 봄의 전령들이 올라오는 2월과 3월 사이. 산골짜기 얼음이 녹고 땅은 눅눅한 봄 냄새를 흠흠 뱉는 해토머리다. 마음은 이미 봄물이 담뿍 들었지만 햇볕 한 됫박 필요한 만큼 찬기가 있는 날씨다.

2월은 계절과 계절사이를 이어주는 달이다. 1월의 겨울 추위도 아니고 3월의 봄 내음 나는 달도 아닌 틈새, 늦겨울과 초봄이 만나는 그 언저리 어디쯤에 있는 달이다.

2월이 가고 있다. 2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아이들이 곧 개학을 한다는 것이다. 긴 겨울방학이 시작되었을 때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 주고 시간도 같이 보내리라 다짐했었다. 2월이 다 갈 때쯤 짧은 달력 속에서 그나마 며칠 남은 날짜를 손꼽아보고는 잘 챙겨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양식요리를 배우기로 했다.

요리 실력이 좋으면 후딱 해서 밥상 차리면 되지만 그렇지가 못하니 평소 알고 지내던 요리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오늘은 커리와 난, 투움바파스타, 통새우버거, 비프도리아 네 가지 요리. 4명이서 배우고 각 자 요리를 집에 싸 들고 가서 가족들과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양식 한 상 차려먹는 컨셉이다.

밀가루 반죽을 해서 모양을 만들다 보니 다른 거에 비해 유독 작은 난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안쓰러운 달 2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열한 달에 비해 늘 날짜가 부족한 달. 태어날 때부터 없는 집에서 태어난 거 같고, 어찌 보면 살 날을 다 못 채우고 먼저 세상 뜬 사람 같아 아린 달이다.

일수도 적은데다가 설 연휴까지 있어서 영업직에 근무하는 분들은 2월 실적을 채울 마음이 조급하겠지만 부족해도 질끈 눈 감아 줄 것 같은 달. 1월에 거창하게 세운 계획과 목표치를 달성하느라 힘에 부친 심신, 숨고르기 하며 쉬어가는 달이다.

2월은 벌써 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달이다. 새해 덕담을 주고받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문득 달력 한 장을 넘기며 '벌써 2월이야?' 한마디씩 한다. 가장 짧은 달이지만 조급하지 않고 왠지 마음이 편안한 달. 12월 송년회로 분주하고, 새해 맞이하면서 각종 모임에 총회하느라 바쁘게 다니다 한 숨 돌리고 가는 달.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2월은 가족의 달이다. 3월이 새 학년 새 학기 시작되는 달이라 아이들 준비물을 미리 준비하고,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과 밥상 앞에서 세끼 챙겨 먹으며 일상을 공유하는 달이다.

평소 잘 쓰지 않는 나무 도마에 새우버거를 일렬로 놓고, 비프도리아 위에 치즈를 한가득 올린 다음 파슬리 가루를 뿌리고, 야자수밀크로 만든 파스타를 흰 접시에 놓았다. 밥하고만 먹던 카레를 난과 찍어 먹게 세팅했다.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지며 우리 집 식탁이 변신했다고 사진 찍기 바쁘다. 한상 그득하게 차려진 밥상머리에서 맛나다고 벙실벙실 웃는 아이들이 활짝 핀 봄꽃 같다.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에서 연한 청보랏빛 봄까치꽃이 봄을 알리고 있다. 봄의 시작이다. 언 땅 뚫고 새싹 돋는 소리 들리는지, 새싹들이 헐거워진 흙을 헤쳐 나오는 해토머리다. 잠포록한 날씨, 산수유 목련 몽우리가 더 도톰해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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