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는 시누이
말리는 시누이
  • 중부매일
  • 승인 2019.03.0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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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언제 어느 때든 찾아뵈면 맨 발로 달려와 맞아 주시고 "밥 먹고 가라"가 첫 번째 인사인 나의 영원한 베이스캠프. 구멍 송송 난 땀에 젖은 누우런 메리야스 하나 달랑 입은 채, 맨 발로 뛰놀다 밖에 나가면 자연이 온통 교과서였던 60여 년 전. 열여덟 누이는 갓난쟁이 동생을 업어 키웠다. 산나물 한 보따리 머리에 이고 장에 나간 어머니 대신 젖먹이에게 암죽 끓여 먹이고, 졸리고 배고파 보채는 아기를 재우며 엄마 맞잡이로 막내둥이를 키운 것이다.

전쟁을 겪으며 배를 쥐어짜던 보리 고개 모진 세월을 맨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오신 탓일까. 강해도 너무 강해 똑 부러질듯한 성격의 시어머님은 어린 딸에게 살림살이를 혹독히 가르치셨다. 시집가면 책잡힌다며 농사일부터 고추장 된장 담그기는 물론 두부까지 만들어 먹었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게다가 어린 동생까지 돌봐야 했으니 학교를 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밭에서 일하다 친구들이 책가방 들고 저만치 무리지어 오면 창피해서 나무 뒤에 숨곤 했다는 형님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학교가 싫다며 집을 뛰쳐나가는 철없는 학생들의 배부른 투정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중매쟁이를 통해 이웃마을 농사 많이 짓는 집에 시집가면서도 막내동생이 못내 눈에 밟혀 밤에는 신랑 모르게 소리 없이 울곤 했단다. 촌부자 일부자라고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살림을 일구어 이제는 살만큼 산다고 해도 형님의 굽은 허리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조건 없는 사랑은 내리 사랑임에 틀림없다. 형은 아우를 아우는 또 그 밑의 아우를 돌보며,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채움 받으며 그 속에서 자연스레 인간관계와 사회성이 저절로 익혀지던 시골 집 안마당이었다. 그 시절 어린 누이 손에 자란 그 갓난둥이 아이가 바로 내 남편이다. 친정엄마의 자상한 손길 보다 더 따듯한 사랑으로 변함없이 동생 댁을 어여삐 봐 주시는 형님. '때리는 시어미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무색 할 정도로 한결같은 시누이 사랑은 끝이 없다. 세상물정 모른다며 막내며느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시던 시어머니. 그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를 열 두 폭 치마로 싸안아 이리 저리 덮어 주시고 사랑으로 품어주시던 나의 위로자. 그분이 바로 말리는 시누이였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형님의 넉넉한 베품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결혼 후 지금까지 김장김치는 물론 참기름. 들기름. 무공해 배추 한 포기. 감자. 고구마. 밑반찬까지 끝없이 챙겨주시는 형님의 동생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다. 당신 손에 자란 막내 동생과 함께 하는 올케를 딸자식 못지않은 사랑으로 돌봐 주심은 어떤 감사로도 부족하다.

혹 손국수라도 미는 날이면 우리 가족은 특별식으로 배불리 외식하는 날이다. 신기한 것은 아이들도 제 고모 집에 가서 먹는 밥이 고급진 음식점보다 훨씬 더 맛있다는 것이다. 그 손맛에 길들여진 남편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형님은 분명 그 속에 사랑 가득담은 양념을 흔들어 넘치게 넣었으리라. 가슴 따듯한 사랑을 행함으로 가르쳐주신 위대한 스승이 바로 형님이시다. 오늘 저녁엔 시누이표 청국장을 보글보글 맛있게 끓여 형님이 애틋하게 사랑하는 그 막내 동생과 함께 사랑의 만찬을 나누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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