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위대한 사람이다
모두가 위대한 사람이다
  • 중부매일
  • 승인 2019.03.0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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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눈] 성낙수 시인

사람은 위대한 자연의 일부로서 울음소리를 크게 내며 특별히 소중하고 위대하게 태어난다. 사람들이 서로가 위대함을 인정하고 살아간다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나만 위대하고 내 가족만 위대하고 내 친구들만 위대하고 내 편만 위대한 것은 아닌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위대한 것이다. 내 편이 아니면 서로 믿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재판의 결과에 더 민감하고 결과를 더 믿지 않는다. 큰 도적들이 더 큰 소리를 내고 있다. 자신들만 위대한 것처럼 큰 소리들 치고 있는데 사람은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권력이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모두 다 함께 위대한 것이다. 특히 갑질하는 자들은 자신들만 위대한 줄 착각해 위대하지 못한 행동을 자주하고 있다. 갑질을 하는 행위는 실수가 아니라 저보다 강자에게 갑질을 할 수 없고 결코 안하기 때문에 갑질은 바로 위대하지 못한 소인배의 행동이다. 상대방에게 위대한 것을 발견할 때 나 자신도 진정 위대해 지는 것이다.

오랜 시간 사법적으로 처벌 받은 자들을 살펴보면 무고로 처벌을 받고 있는 자들도 일부 있고, 정말 억울한 자도 있고, 잘못을 저지르고 억지로 억울해 하는 자도 있다. 댓글 조작은 어느 누가 해도 민주주의의 파괴인 것이다. 커다랗게 댓글 조작의 피해를 입은 사람은 누가 보상할 것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만 양상하고 수혜자는 아무 상관이 없는 해괴한 것이 댓글 조작인 것이다. 진실 내다버려도 진실은 끝내 찾아온다고 보는데 꼭 그렇지 않다. 어느 진실인가가 중요하다.

힘이 있는 자들은 사법부의 판결에 분노하고 도전하고 있는데, 소소한 시민들은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다. 이 소리를 가슴으로만 내고 있는 약자들이 더 위대한 것이다. 불복은 어떠한 이유가 있더라도 있을 수 없다. 제 맛에 맞는 판결을 하면 좋은 판사고, 제 맛에 어긋난 판결을 하면 나쁜 판사로 몰고 있는 아둔한 사람들도 본래는 위대한 사람이다. 위대한 사람들이기에 문제 해결을 위해 제도를 자주 바꾸고 있다. 위대한 사람들은 용기를 잃지 않아 위대한 것이다. 포기를 모르는 용기야 말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다. 여러 대통령 중에 한 번도 위대한 대통령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아쉽다. 위대한 대통령은 내 편만을 위한 정책을 펼치지 않고 대다수를 위한 정책을 펼친다.

성낙수 시인
성낙수 시인

오래 전에 필자는 장교로 전방에서 군복무를 했다. 적(북한)과의 긴 대치 속에서 연민의 정도 느꼈지만 필승의 신념이 우선하게 되었다. 우리의 장병들은 거의 가족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 밤낮 경계 근무에 철저를 기울였으며 전투력 신장에 몸을 바쳤다. 그 결과 오늘의 번영을 맞이한 것이다. 위대한 우리 민족이 유감스럽게 분단의 아픔을 오래 안고 있다. 평화를 위한 작금에 돌아가는 기류로 보아 슬기롭게 평화를 안착할 수 있는 위대한 민족일지라도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

진정한 한반도의 최종적 비핵화와 반 기업 정서 해소를 시간이 걸려도 가져와야 한다. 위대한 모당대표가 자기편인 도지사 재판 결과에 깜짝 놀랐다고 방송에서 하는 소리와 그의 눈빛은 필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재판을 한 위대한 판사는 어떤 마음일 지 걱정이다. 서로 양보 않고 하려는 힘 있는 자리의 보수가 너무 많다. 이것을 최대한 줄여 서로 하지 않으려 하게 해야 위대한 국민이 된다. 위대한 미래를 위해 서로 양보하여 정권을 서로 안 잡으려 하는 위대한 나라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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