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3월 첫날, 서울에 가족행사가 있어서 집을 나서는데, 겨우내 입던 콤비 윗옷이 무거운 느낌이다. 오늘만 그 옷을 입어보라는 아내의 권유를 받아들인 게 잘못이었을까, 행사에 참여하는 오후 내내 무거움을 느끼다가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 옷을 벗어버렸다. 그렇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겨울산행을 위해 새로 준비했다가 딱 한 번 밖에 입어보지 못했던 두꺼운 등산복 바지도, 두 벌이나 되는 스키복도,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옷장 속으로 옮겨놓아야 한다. 겨울산과 스키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눈 한 번 신나게 내리지 않았던 지난 겨울이 너무 안타깝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거다. 그렇게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는다. 그 사이에 우리는 존재한다. 존재의 이유(理由)는 존재의 가치(價値)가 있을 때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고 부모형제와 은사·선후배를 통해 성장시키시며 쓰시다가, 때가 되면 불러 가신다. 각자에게 저마다 다른 탤런트(재능)를 주셔서 그것을 가지고 서로 섬기며 살라고 하신다. 섬기는 것도, 사람에게가 아닌 하나님께 하듯 정성을 다해서 하라고 하신다. 때로 자신의 존재이유가 의심될 때가 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 것 같다. 오히려 같은 업종의 다른 이들에게 이득 될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경쟁이 심화된 레드오션(red ocean)에 살고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살리는 것은,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재능에 있다.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사는 나도 그렇다. 젊은 변호사들이 열성도 뛰어나고 새로운 판례도 많이 알지만, 나 나름대로 고객을 섬기는 노하우와 사명감으로 다른 이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는 안목과 일 자체를 대하는 태도가 그들과 다르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도 쓸모가 있다.

경계해야 할 것은 매너리즘(mannerism)이다. 법조에 발 디딘지 40년 가까이 되고, 변호사 업무만도 20여년이 지난 지금, 종래와 같은 생각과 패러다임으로만 살면, 뒤처지고 외면당할 뿐이다. 마치 봄이 와서 겨울옷을 입으면 몸이 불편한데도, 아쉬움과 미련 때문에 그대로 입고 집을 나서는 것과 같다. 몸이 말해준다. 일 때문에 만나는 상대방인 고객이 불편한데, 예전 생각, 예전 몸짓으로 대하면 그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옷이 필요하다.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요구와 내 역량을 잘 아울러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내하며 들어주고, 상대방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확인시켜줌으로써 전문가다운 안목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마음이 필요하다. 성경이 우리에게 교훈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 4:22-24)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3월을 나선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만물이 소생해서 기지개를 켜며 나서는 봄, 약동하고픈 몸과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더 부지런하게 나선다.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더 많이 사건기록을 읽어보고, 더 많이 판례를 찾아볼 것이다. 매일 아침 기도할 때, 내게 붙여주신 의뢰인들, 특히 수감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나를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더 일찍 출근하고, 30분 단위로 인터뷰 일정을 정한다. 꽉 찬 4주가 기다리는 3월이 좋다. '법률 섬김이'로서 섬김의 소명을 다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나눠주는 진정한 '에너자이저(energizer)'로 나선다. 그 마음이 나를 기다리는 구속 피고인을 만나러 가는 교도소 마당을 뛰어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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