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메카 잠재력 충분… 청주 프로축구단 창단 도울 것"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청주프로축구단 창단은 '선택'아닌 '필수'라며 청주 K리그프로축구단 창설을 적극 돕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 김용수

[중부매일 이민우 기자] 청주시는 인구 90만에 육박하면서 광역시 규모로 급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스포츠단이 전무한 '스포츠 불모지'다. 청주시가 스포츠팬들의 외면에서 벗어나려면 프로축구단 설립이 그 어느때 보다 시급하다. 중부매일은 이에 따라 지난 5일 프로축구단(청주FC) 설립을 위해 청주시를 방문한 허정무 (사)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를 만나 프로축구단 설립과 지원, 프로축구의 발전방안 등을 단독 인터뷰 했다. /편집자

"전 세계 유명 축구감독들은 한국인은 원래 축구를 좋아한다고 이야기 한다."

허 부총재는 "일본 보다 한국 민족성에 축구가 딱 맞다. 축구는 역동적이며, 진취적이고 매우 도전적"이라며 "축구는 어느 구기 종목보다 인내심이 필요하며, 단결력(팀워크)가 생명이다. 축구는 우리 민족의 기질에 너무 잘 어울린다"고 강조했다.

-프로축구단 창단 지원을 위해 청주시를 방문한 배경은.

▶지난 4~5년간 청주 프로축구단 설립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김현주 청주FC이사장(59·SMC엔지리어링 대표이사)을 만나 그동안 축구단 신설 추진과 청주시의 반응을 보기 위해 방문했다. 청주 축구인들의 숙원인 청주시 프로축구단창단(2부)을 비롯해 지역 축구인들은 만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것이다. 김 이사장은 평생을 축구에 푹 빠져 살고 있다. 30년 전 LG반도체에 근무하면서 안양에서 제2의 고향인 청주로 내려온 김 이사장은 선수출신은 아니지만 축구인들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축구에 할애했다. 지금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축구경기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또한 지역 출신 선수육성과 선수 영입을 위해 매진하고 있어 김 이사장을 격려하기 위해 청주를 방문했다.

-지역 축구인들의 염원인 청주프로축구단 창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청주프로축구단은 반드시 창단돼야 한다. 프로축구단이 창설될 수 있도록 프로축구연맹도 행정적 지원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프로축구단 창단에 시기적으로 늦은 감은 있다. 청주시의 프로축구 창단 진행과정 보다 세밀하게 살표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현재 청주시는 프로축구단 창단이 무르익었다. 구단이 흑자를 내야하고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해야 하기 때문에 충북 또는 전국을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고 프로축구단을 활성화해 흑자를 낼 수 있는 경영을 해야 한다. 또한 성적을 낼 수 있는 감독선발에도 포커스를 둬야 한다. 선수선발은 타 구단에 가 있는 능력있는 지역 출신 선수들의 선발을 통해 지역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 청주 시민들도 프로축구단이 창단돼 '삶의 질'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프로구단이 창단되면 문화와 체육을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청주는 대도시에 비해 엘리트체육, 동아리축구 인구가 많고 5세부터 9세 이하 축구인구도 많다. 최순호(청주상고·현 대성고), 최상국(청주상고), 이훈재(청주상고), 구자철(대성중) 등 청주 출신 유명 선수들도 즐비하다. 청주는 전국에 비해 우수한 축구선수 등 인프라가 잘 돼 있는 등 스포츠 메카로서 성장할 수 잠재력도 충분하다.

-한국 프로축구가 나아갈 길은.

▶청주프로축구단 창단은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K리그 또한 사랑받아야 하며, 프로축구 창단과 발전이 한국축구의 원동력이다. 한마디로 K리그가 답이다. 아시아에서 세계축구에 가장 근접할 나라는 한국이라고 세계 유명감독들은 이야기 한다.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처럼 우리 국민이 보여준 열정 등을 보면 잠재력이 무한하다. 우리나라 축구가 침체기를 맞으면서 팬들이 등을 돌린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축구가 저평가돼 있다. 축구팬 여러분께서 인내를 갖고 사랑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로스포츠는 지역 연고가 확실해야 한다. 그래야 응원할 팀이 생기게 된다. 프로스포츠는 국가대표팀 경기하고 틀리다. 프로축구는 태생부터 유랑극단처럼 연고지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녀 초기 정착에 실패했다. 나중에 급히 연고지 정착을 했지만 아까운 시간이 흘렀다. 초기에는 연고지보다 기업의 이미지가 강해 지역 주민의 마음속에 자리 잡지 못했다. 그리고 프로축구 출범할 때 서울 등 대도시를 떠나야 하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다. 서울에 일화. SK가 연고지로 돼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일화는 천안, SK는 부천으로 가게 됐다. 정부 방침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지만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다. 축구단을 운영하는 구단들의 경영마인드도 부족했다. 마케팅에서부터 팬 서비스 등 모든 게 부족했다. 지난 2014년 심판 매수 사건 등 악재에다 대표팀의 부진 등 악재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연맹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시기였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연맹은 최선의 노력을 해왔다. 연맹의 노력으로 점차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도 한번은 침체기가 있었는데 그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프로축구에 열광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K리그는 이제 밑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중이어서 팬들이 이를 잊지 않고 경기장을 찾을 줄 것이다.

-K리그 활성화를 위한 방안은.

▶팬들이 즐기는 축구를 하려고 현재 프로축구 선수들은 기술적으로 매우 신경 쓴다. 심판의 경우 경기중단을 최대한 막고 빠른 진행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심판 매수 사건을 계기로 판정의 공정성과 승부 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철저히 운영하고 있다. 매주 경기가 끝나면 이틀 동안 분석 요원들이 전 경기를 분석하고 있다. 이제는 예전처럼 심판에 의해 승부가 뒤바뀌는 일이 없어 팬들의 핀잔을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팬 확보를 위해서도 각 구단과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다. 특히 여성 팬들의 폭발적 증가에 연맹이나 구단 모두 희망을 품고 있다. 연맹은 여성 팬 우대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경기장에서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먹거리와 볼거리 제공에도 신경쓰고 있다.

-청주 축구팬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청주프로축구단 창단은 '선택'아닌 '필수'다. 지역 팬 여러분이 성원과 청주시의 지원이 필수적 '명제'다. 청주 축구 나아가 충북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청주시와 프로축구단 창단팀도 상호 미비점을 보완하고 창단에 적극 매진해야 한다. 많은 지역 축구팬들이 사랑해 주고 격려해 주면 반드시 프로축구단 창단이 현실화될 것이다. 

 

허정무는 누구인가

전남 진도군 출신으로 서울 영등포공고와 연세대를 졸업한 허정무(64)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대한민국의 축구 국가대표선수와 감독을 모두 역임했다. 지난 1974년부터 1986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했다. 1986년 FIFA 월드컵 본선 3차전 이탈리아전에서는 득점을 기록했다. A매치 101경기에서 30골을 넣었다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등에서 활약했고, 1980년대 대한민국 축구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한국인 감독으로서는 최초로 외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했으며, 휴식을 갖기 위해 지난 2010년 7월 2일 연임을 포기했다. 2010년 8월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됐지만, 2012년 4월 인천 유나이티드의 성적 부진으로 사퇴했였다. 2013년 두월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 선임됐으나, 브라질 월드컵 성적 부진으로 인해 2014년 7월 10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사퇴했다.

그는 지난 1978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한국전력에서 자신의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했고, 그 해 6월 해병대에 입대해 군 복무를 마쳤다. 차범근이 1979년 7월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해 활약하자, 이에 자극을 받아 제대한 후 1980년 8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팀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했다. 주로 미드필더로 뛰면서 3시즌 동안 77경기에서 15골을 넣고 1982~1983 시즌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고, 1983년에 계약이 만료된 후 국내로 복귀했다. 지난 1984년 K리그의 현대 호랑이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고, 1986 시즌이 끝난 뒤 은퇴했다.

지난 1991년에 포항 제철 아톰즈에 코치로 입단해 활동하다 1993년 현대 호랑이로 옮겼다. 1990년 FIFA 월드컵에는 트레이너, 1994년 FIFA 월드컵에는 코치로서 각각 참가했다. 1993년 포항 아톰즈 감독에 취임해 그 해 아디다스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95년 시즌 도중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됐고 이듬 해인 1996년 6월 정병탁 감독이 사임한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K리그에 복귀했다. 1997년 팀의 K리그 준우승과 FA컵 우승을 이끌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1998년 시즌 도중에 1998년 FIFA 월드컵 도중 경질된 차범근 감독의 후임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됐고, 2000년 하계 올림픽 국가대표팀도 함께 맡게 됐다. 지난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도 대표팀을 이끌었다. 국가대표팀 사퇴 이후 2002년 FIFA 월드컵에 대비해 대한축구협회 기술 고문을 맡았다. 그 뒤 2004년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고, 그 해 6월 요하네스 본프레러 감독이 취임한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선임됐다. 하지만 그 해 말에 수석코치 직에서 사임했고, 예전에 지휘봉을 잡았던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 다시 취임해 7년 만에 복귀했다. 지난 2006년 8월 30일 K-리그 통산 9번째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했으며, 2006년과 2007년 팀의 FA컵 2연패를 이끌었고 2006년 FA컵 당시에는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됐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핌 페르베이크 감독의 후임으로 2007년 12월 국가대표팀에 다시 선임돼 거스 히딩크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와 요하네스 본프레러, 딕 아드보카트와 핌 페르베이크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7년여에 걸쳐 외국인 사령탑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특히 허 부총재는 ▶체육훈장 백마장을 비롯해 ▶체육훈장 거상장 ▶프로축구 빅스포상 ▶FA컵 지도자상 ▶AFC 선정 2월의 감독 ▶FA컵 최우수 지도자상 ▶제21회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최미나씨와 딸 허화란과 허은 2녀가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