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가난하던 시절, 땅 뙈기 하나 없는 척박한 곳에서 한 평생을 한 곳에서 터전을 일구며 사신 부모님은 밤낮으로 호미질을 멈추지 않으셨다. 결실에 관계없이 터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으로 여긴 부모님은 해가 갈수록 넓고 커져가는 터전을 바라보시며 흐뭇해하셨다.

봄이 오는 텃밭에는 참나물, 민들레, 취나물이 터전을 이루었고, 풀과 나무들도 그 자리에서 번져나갔다. 미물인 풀벌레조차 의미를 부여하며 생명의식을 내포하고 살아가는 고향은 내 삶의 근원지이다. 앞산 부모산에 해가 뜨면 일과를 시작해 뒷산 독립사에 해가 지면 하루를 접는 고향은 그렇게 자연에 순응하며 원초적인 생명력이 숨 쉬고 있는 곳이다.

학창시절 나를 만든 건 고향의 물과 바람과 들판이었다. 지금도 고향 하늘을 바라보면, 그 시절 뛰놀면서 체득한 모든 것들이 재생되어 잠든 세포를 깨운다.

터전은 손길이 만든다. 농부는 양식을, 기술자는 편리함을, 요리사는 음식을, 의사는 생명을, 예술가는 감동의 손길이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손을 만들어 낸다. 터전은 곧 살아가는 의미이자 가치이다.

나는 지금 글밭에서 어쭙잖은 글 솜씨로 신념과 성찰을 주는 글을 캐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결실은 시원찮다. 이 심오한 터전에서의 풀무질은 헛바람만 일으킬 뿐, 삶의 근원인 생명과 사랑, 자연의 움직임조차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학의 터전을 사랑한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풀잎의 움직임과 나무의 표정에서 생명을 읽어내는 지혜는 없더라도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어 준 소중한 터전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 땅에 살고 있음을 감사한다.

지금, 지구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잃기도 하며 떠나기도 한다. 잉카문명의 고대도시 마추픽추를 떠나 아마존 상류로 터전을 옮겨간 잉카족을 시작으로 오늘날에는 가뭄, 홍수, 태풍, 지진 같은 천재지변으로 터전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하기도 한다. 내전으로 전쟁치안의 위협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껴 고향을 떠나 난민 또는 실향민으로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 슬픔과 탄식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터전은 생명의 근원인 어머니 자궁 속 같은 곳을 원한다. 아늑하고 포근하고 안정적인 터전에서 자유와 불안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이제 터전을 지키려 한 우물만 파는 시대는 지났다. 요즈음 같이 다양한 융합의 시대에는 여러 개의 낚싯대를 드리우며 살아가야 할 터전이 필요해졌다. 다양한 터전에서 주어진 터전을 잘 일구며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대이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니 새싹들이 단단히 터를 잡는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