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조영의 수필가

일 년에 한 번 반명함판 사진을 찍는다. 이력서에 쓸 사진이라 긴장되고 진중해진다. 그러다 보니 표정도, 앉은 자세도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는 버릇이 있다. 의식적으로 숙이다 보니 자연스럽지 않은가 보다. 고개 살짝 들어주시고요, 상체는 오른쪽으로 좀 더, 살짝 웃어보세요, 그 자세 그대로 있으세요. 눈감고 들으면 아기 사진 찍는 것과 흡사하다. 잠깐이지만 카메라 렌즈 앞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지금보다 젊고 예쁘게 나왔으면 하고, 사진 찍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빨리 끝냈으면 하는 마음에 만족한 사진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길어졌다.

사진관을 나오면서 C 선생에게 하소연하자 답이 명쾌하다. 우리 나이에 명함판 사진 찍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겁니다.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젊은이입니다. 듣고 보니 우문현답이 되었다. 사진 찍는 것에 불편과 불만만 생각했을 뿐 명함판 사진의 용도를 잠시 잊었다. 사진을 찍기 전 어떤 사진을 찍을 거냐고 물었다. 명함판이라고 하자 주인은 슬쩍 내 눈빛을 살폈다. 방과 후 학교 강사인데 제안서에 붙일 사진이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을 수선스럽게 말했다. 또 취업 용도로 쓸 사진은 신경 써주지 않을까 생각에서였기도 했다.

나이 들면서 사진 찍는 것이 두려워진다. 봄 나무 물오르듯 살진 몸매며 처진 눈, 부자연스러운 표정의 사진을 보면 재빨리 시선을 뗀다. 마음속으로 나를 밀어낸다.

모임에 갔을 때 내 의도가 아닌 찍는 사람의 마음으로 찍어서 여과 없이 SNS에 올라온 내 사진은 더욱더 싫다. 단체방의 사진은 지울 수도 없다. 불안한 표정과 어색한 자세의 사진은 나의 또 다른 나를 보여준다. 그래서 카메라 렌즈가 다가오면 의식적으로 피한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나 스스로 왕따가 된다. 같은 자리에 앉거나 좋은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 찍을 때 슬그머니 피하거나 같이 찍는 일행 속으로 자신 있게 합류하지 못한다. 모임이나 단체 여행을 함께 갔지만 사진 속에 나는 없다.

아버지의 환갑 사진은 우리 집의 유일한 가족사진이다. 과일에 壽, 福 글자가 쓰여 있고 낮은 초가지붕이 병풍 끝에 닿을 듯 앉았다. 앞줄 가운데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아버지가 앉아 계신다. 어머니의 고운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육촌 오빠는 중학생도 아니면서 '中'배지를 붙인 커다란 모자를 썼다. 키 작은 작은할아버지며 당숙, 고모들도 보인다. 색깔을 알 수 없는 조화는 비닐봉지 속에서 꽃을 피웠고, 한복을 입은 언니들이 나란히 서 있다. 그 속에 나만 없다.

양손을 포개고 앉은 어머니 손에 내 손을 가만히 얹어본다. 추위는 누그러졌지만 바람은 따뜻한 음력 정월이었다. 나는 새 학기에 4학년이 된다. 아버지 환갑 때 치마를 입혀 주겠다던 어머니와 약속이 있었다. 어린 나를 위해 한복 대신 준비해 놓은 치마는 어떤 것일까. 아버지 환갑을 손꼽아 기다린 것은 오직 새 옷 치마를 입을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별안간 추워진 날씨로 치마를 입혀 주지 않았다. 떼를 써도 소용없었다. 울면 안 된다며 달래는 어른들 때문에 울지 못했던 그 화풀이로 기념사진을 찍지 않았다. 막내딸의 고집을 보며 약속을 지키지 못한 어머니는 카메라 앞에서 무슨 생각 했을까. 어머니의 눈빛과 마주한다. 지금이라도 다가가면 슬그머니 어머니 곁에 자리를 내어 줄 것만 같다. 마음으로 가족 곁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어머니가 나보다 더 젊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올 것 같지 않던 환갑이 내년이면 나도 돌아온다. 아버지 같은 풍경의 환갑 사진은 찍을 수 없지만 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진은 찍지 않을까 싶다. 이왕이면 좋은 풍경이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면 대상만 찍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곳이라도 내가 없는 사진은 애정이 덜하다. 감흥도 밋밋하다. 겉으로는 사진 찍는 것을 거부했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미세먼지로 자욱한 요즈음이지만 봄은 곁에 와 있다. 땅이 녹고 새소리가 요란하다. 머지않아 꽃들도 피어날 것이다. 예쁜 꽃이 있으면 가까이서 사진 찍고 싶다. 꽃을 사진으로 담아 기억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꽃을 보면 표정이 피어나는데 웃음꽃이라고 한다. 꽃보다 아름다운 웃음꽃을 스스로 피우려 하지 않았던 거부의 몸짓을 이젠, 두려움 없이 나를 사랑하리라 다짐하며 웃음꽃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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