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성진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2015년부터 대두된 계급론이 있다. 바로 수저계급론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직업, 경제력 등으로 본인의 수저가 결정된다는 이론으로, 처음에는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4계급으로 나누다가 플래티넘수저, 다이아몬드수저가 금수저 위에 놓여졌고, 동수저와 흙수저 사이에 놋수저와 플라스틱수저가 위치한 세부 계급그림까지 등장했다. 청년실업, 소득양극화 등 각종 사회문제와 결부되면서 큰 공감을 얻었고 아직까지도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수저계급론에 사용된 금과 은, 동, 흙 등을 보면서 '흙은 참으로 억울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흙이 무슨 죄가 있다고 싸잡아서 한참 아래로 치부하는 걸까? 그것도 플라스틱보다 아래로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속담을 봐도 흙을 귀하게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잦힌 밥에 흙 퍼붓기'라는 속담은 남이 잘되는 것을 훼방하는 심술궂은 행동을 이르는 말이고, '씨름은 잘해도 등허리에 흙 떨어지는 날 없다'는 속담은 재간은 있지만 별수 없이 편히 살지 못하고 일만 하고 살아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하니 흙은 억울한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흙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음 또한 사실이다. 흙 위에 집을 지어 태어나고, 흙에 식물을 키워 먹고, 흙이 보유한 물을 올리거나 위로 흐르는 물을 마시는 게 바로 사람이다. 사람만이 아니다. 흙은 수많은 생명체를 품고 있다. 대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거나 유기물을 분해하는 미생물 역시 흙 속에 풍부히 있고 지렁이나 두더쥐, 많은 곤충 역시 흙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 농촌진흥청에서는 전국 농경지가 한 해 동안 팔당댐 약 16개 크기의 물 저장 기능과 지리산국립공원 171개의 이산화탄소 흡수 효과 등 281조원에 달하는 공익가치를 가졌다고 발표했다. 세부적으로는 양분 공급 179.8조원, 자연 순환 79.1조원, 식량 생산 10.5조원, 탄소 저장 6.5조원, 수자원 함양 4.5조원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도시화와 산업화, 집약적 농법, 삼림 개발 등으로 우리의 흙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그래서 흙의 중요성을 알리고 지속가능하게 흙을 관리하기 위해 국제연합(UN)에서는 2015년을 '국제 토양의 해'로 정했고, 2014년부터 12월 5일을 '세계 토양의 날'로 기념하기로 결의했다. 한국에서도 흙의 소중함과 보전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2016년부터 매년 3월 11일을 법정기념일 '흙의 날'로 지정했다.

오성진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오성진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그런데 같은 법정기념일이 있는 물의 경우는 물 절약 실천방법들이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데 흘러가는 물과 달리 항상 옆에 있는 흙은 어떻게 소중히 여겨야 할까?

좋은 흙과 나쁜 흙을 구별하고, 흙의 중요성을 알기만 해도 벌써 반은 도달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에게 주말농장 등을 통하여 농업과 생명을 알게 하고, 우리 먹거리의 95%가 흙에서 오고, 흙이 "에이 지지"하고 말하는 더러운 것이 아님을 알게 하면 금상첨화일 듯하다. 오죽하면 아토피가 아이들이 흙을 피했기에 생겼다는 농담이 나왔을까.

'earth'라는 단어를 흔히 지구로 번역한다. 그러나 사전을 찾아보면 지구 외 땅, 흙이라는 뜻도 있다. 그만큼 흙은 지구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다. 3월 11일 흙의 날을 맞아 밖에 보이는 흙을 눈이 아닌 가슴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좋은 흙 한 웅큼을 손에 집어 봄이 곁에 왔음을 느끼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키워드

#오성진 #기고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