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긴 겨울 방학을 마치고 새 학년이 되어 학교에 등교하는 활기찬 학생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뿌듯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건장한 고등학생 한 무리의 친구들이 생기 있게 공기를 가르며 뛰고 장난치는 모습 뒤로 또래보다 작은 학생이 무심한 표정으로 등교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지인의 착한 얼굴을 닮은 그녀의 아들이 떠 올랐다.

태어날 때부터 약했던 지인의 아들은 그녀에게는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또래보다 작은 키와 왜소한 몸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 친구들과 함께 잘 어울리며 별문제 없이 졸업을 하였다.

문제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학교를 가기 싫어하고 어딘지 모르게 시들시들 시들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어미의 마음은 그야말로 애간장이 다 녹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도 이야기하지 않는 아들의 상태를 먼저 파악한 것은 병원 의사 선생님이었다. 무언가 아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으니 잘 살펴보라는 조언을 듣고, 그러지 않아도 2학년이 되고부터는 부쩍 전학을 시켜 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가 이상하기는 하였지만 말을 하지 않으니 사정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아이의 외침을 건성으로 듣던 가족들은 학교 폭력으로부터 한계에 달한 아들이 집을 나가 거리를 방황한다거나 아프다는 이유로 잦은 결석을 하며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할 때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소한 아이는 마음도 여렸기에 괴롭힘을 당해도 당차게 대들지 못했고 가해 학생들 역시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 습관처럼 혹은 재미 삼아 아이를 괴롭혔던 것이다.

친구들이 지켜보는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심한 모욕을 당하고 폭행과 공갈 협박을 당하면서도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것에 무력감과 공포심으로 고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그 아이 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괴물이었던 것이다.

친구라도 한 명 있었다면 숨 쉴 구멍이라도 있었을 텐데 가해 학생들은 친구를 만들 기회마저도 훼방을 놓고 왕따를 시키며 투명인간 취급을 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아이는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3학년이었던 그해 여름에 자퇴를 하고 말았다.

자퇴 후 내 자식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거나 용납할 수 없었던 아버지에 의해서 중, 고등 검정고시를 치렀지만 이미 마음의 상처가 있던 아이는 대인 기피증이 생겼고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곤 하였다. 깊은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방 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아이는 자신만의 섬에 갇혀 약을 먹고 입원을 반복하며 지냈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모든 것이 자신의 죄라고 생각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보살핌으로 어느 정도 낫는가 싶었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게 되는 군대라는 문제가 아이에게 또 다른 억압으로 다가왔다.

몸은 자랐지만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못한 아이는 호전되던 증세가 다시 제 자리 걸음이 되고 또다시 입원을 반복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동안의 진료 기록으로 군 면제를 받고 요즘은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린다는 지인.

그녀는 가해자들과 학교 폭력을 향해 외치고 싶다 했다.

'장난 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며 가해자들로 인해 소중한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고 가족들도 깊은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아느냐고….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