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편은 편애하고 다른 편은 공격함

친한 선배교수와 간만에 만났다. 대학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늘 형님처럼 따르던 선배와의 대화는 늘 재미와 의미로 가득한 유쾌한 것이었다.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와 뉴스 시청을 위해 TV를 켰다. TV에서는 마침 국회에서의 낯 뜨거운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야당의 원내대표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그는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 칭했고, 여당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을 모독한 발언이라 발끈해서 단상으로 올라가 항의를 계속했다. 결국 국회의장의 장황설이 있은 연후에야 대표발언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담소도 하고, 농담도 하고, 여행도 한다. 그래서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과 처지가 같거나,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모여 있으면 발전은 없다. '다름'이 주는 자극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나와 다른 면모를 지닌 사람이나 집단을 멀리하는 경향도 있다. 이와 관련된 고사성어가 『後漢書(후한서)』에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한무제(漢武帝) 유철(劉徹)이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모두 내쫓고, 오직 유술(儒術)만을 숭상하자[罷黜百家, 獨尊儒術]"는 동중서(董仲舒)의 주장을 받아들여 유가의 학설을 가장 높은 지위로 격상시켜 통치의 근본 사상으로 삼았다. 유생(儒生)들은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유가 경전에만 의거해 '오경(五經)'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한선제(漢宣帝) 유순(劉詢)이 전문적으로 책을 모아두고 경전을 강의하는 석거각(石渠閣)에 유생들을 소집하여 '오경'을 토론하면서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평하도록 하였다. 유학계(儒學界)는 이로부터 장기간에 걸친 논쟁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이 논쟁을 "자신의 관점에 일치하는 사람을 같은 파벌로 보고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공격한다(黨同伐異)"라고 불렀다.

학술적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동당벌이'가 나중에는 당파(黨派) 싸움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당파란 결국 정치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리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들의 목적이 자신들의 이익 보호에만 있다면 이러한 당파는 백성의 삶을 보호하고, 증진시켜야 하는 정치적 지향과는 이미 거리가 멀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것이야 뭐라 비난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참고하는 상호작용이 없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나아가 비판의 언사가 저급하면 전달코자 하는 본질적 의미는 슬며시 뒤로 사라지고 몇 마디 말이 화제의 핵심이 되고 만다. 이번 사건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적어도 국회에서의 논쟁이라면 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국회에서 이런 방식으로 대화가 진행되다 보니 국민의 생존과 생활을 고민하는 일보다 말꼬리 물고 싸우는 시간이 더 많지 않을까? 제발 소모적 정쟁을 벗어나 국민과 소통하는, 국민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는, 나아가 나라 전반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힘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기대는 허무한 것일까? 민생현안이나 제대로 챙기는 국회가 되길 다시 한 번 희망해본다.

키워드

#배득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