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에 계신 은사님!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의 햇살이 화창합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벼운 미풍, 뜰 안 가득 넘쳐흐르는 아카시아의 달콤한 꽃 내음이 향기롭습니다.

금년에도 각 매스컴에서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하고 은은하게 들려주는 노래 소리는 못난 제자의 가슴에도 파문을 일으킵니다.

온갖 정열과 심혈을 기울여 길러 주신 은사님을 그동안 한번도 찾아뵙지 않았으니 그 지은 죄 태산 같다 하겠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찾아뵈어야지 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저는 위선자인가 봅니다.

어느 해 은사님 앞에 앉았을 때, 어려운 세상살이의 대처방안을, 저의 잘못 된 사회관을 바로잡아주시던 다정다감한 그 말씀은 삶의 지표가 되고, 비탈길로 달아나지 못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은사님 아니 계시니 어느 누구로부터 그런 말씀을 듣겠습니까.

오늘도 하늘나라에서 코흘리개 새싹들과 더불어 즐겁게 담소하시며 기쁨으로 충만 된 하루를 보내고 계실 은사님의 존영이 제 어린 시절 그 때의 기억과 오버랩 되면서 자꾸 떠오릅니다.

함박눈이 수북히 쌓인 운동장에서 편을 갈라 눈싸움을 하던 급우들이 누구의 제안인지 일제히 은사님과의 싸움(?)으로 돌변해 1:50의 불꽃 튀기는 열전을 벌이다가 드디어 저희들의 승리(?)로 미소짓던 은사님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은사님!

은사님은 우물안 개구리인 저희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며 더 넓은 세상으로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하여 종전의 당일 코스인 속리산 수학여행을 2박3일 일정으로 서울로 변경하셨지만, 그 당시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가난한 농촌 학부모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것으로 기억됩니다. 은사님은 이에 굽히지 않으시고 일과가 끝나는 시간부터 아동들의 가정을 일일이 방문, 완강하던 시골 학부모들을 설득해 여행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얻어내기까지는 10리 20리 떨어진 외진 밤길을 혼자 걸어다니셔야 했으니 이제서야 은사님의 고초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저희 집을 방문한 은사님께 시원한 물 한 그릇 올리지 못한 일을 상기하면 지금도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은사님!

지금의 낙도 어린이들이 서울 나들이를 한다고 해도 그 때의 저희들만큼 가슴 설레며 잠 못 이루진 않았을 것입니다. 난생 처음 기차를 타 보는 저희들은 울컥하면 앞사람의 등이고 어디고 간에 시큼한 부산물을 마구 쏟아 놓았었습니다. 은사님은 이 곳 저 곳 다니시며 닦아주기에 여념이 없으셨고 그런 은사님이 죄송스러워 앉았던 저희들이 일어나며 앉으실 것을 권해도 한사코 사양하시던 은사님!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고도 남을 만큼의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창경원과 남산은 몇 번 가 볼 수 있었지만, 청와대와 박물관은 그 때의 은사님이 아니셨다면 지금껏 가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사는 있어도 참 스승은 적고, 학생은 있어도 참 제자는 흔치않다”는 웃지 못할 작금의 세태는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애써 가르쳐 온 학생들이 저들의 본분을 망각하고, 사랑의 매를 든 스승을 고발하고, 집기를 부수고 농성을 하는 모습을 볼 때면 너무나 서글퍼집니다. 저는 지금도 저희들을 지도해 주신 은사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참다운 교육자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남들은 멀고, 험하고, 외롭다고 하는 사도(師道)의 길을 묵묵히 가신 은사님을 올해는 꼭 찾아뵐 결심을 해 봅니다.

은사님! 왕생극락하소서. /수필문학 충북작가회 회장 박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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