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종찬 충북체육회 부회장

이종찬
이종찬 충북체육회 부회장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야 임마, 뛰면서 딴 생각 하지마. 뛴 지 얼마나 됐다고" 50여년 전 경부역전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고등학생 이종찬(충북체육회 상임부회장)은 구간 달리기를 하던 중 등 뒤에서 날아든 날카로운 지적에 깜짝 놀란다. 故 손기정 선생이 차를 타고 쫓아오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충북 선수 중에 좀 뛰는 놈이 있다고 해서 나를 보러 오셨나 봐요. 구간 결승선 통과하고 나서 그때 그 분이 손기정 선생님인 걸 알게 됐어요"

이 부회장은 이날 인연으로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손기정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게 된다. 1972년 전국체전에서 장애물경기대회 한국신기록을 세우는 등 발군의 기량을 뽐냈던 그는 이후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배양성에 나선다. 육상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선수에서 지도자로 육상인의 삶을 이어간 것이다. 특히 자신이 손기정 선생에게 배운 정신을 후배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다.

"손기정 선생님은 성적이 전부가 아닌 인성을 갖춘 사람,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야만 성적도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했죠. 단 한글자도 틀린 말이 없었습니다. 성적을 중요시하는 것이 스포츠지만 올바르게 사는 것이 선수이기 이전에 한 사람에게 더 중요한 것이죠.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충북으로 내려온 그는 충북육상연맹 총무이사로 일하다 중부매일 초대 회장인 故 이상훈 회장과 저녁자리를 하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이 회장님이 충북역전마라톤을 제안하셨어요. 한국에서 육상은 비인기종목이지만 미국은 육상이 풋볼보다 인기가 많다며 미국처럼 꾸준히 노력하면 육상도 국민스포츠가 될 수 있다고 했죠. 그래서 충북도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육상대회가 필요하다고 말이죠. 생각해보니 아이들 육성하는데 최고의 대회가 되겠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이 부회장은 이후 충북체육회 이사회에서 충북역전마라톤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람들을 설득했다. 왜 힘든 마라톤이라는 운동을 고집하느냐는 반대의견에는 이 운동이 '서구권 사람들보다 동아시아 사람들 체질에 맞다', '세계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부회장의 이러한 노력으로 1990년 4월 2일 제1회 충북도지사기차지 시·군대항역전마라톤 대회 개최가 확정됐다. 하지만 첫 대회다보니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더미였다.

"경기코스부터 시작해서 대회 규칙, 선수수급 등 챙겨야 될 일이 너무 많았죠. 특히 영동에서 단양까지 뛰는데 각 시·군을 다 들려야 되니 이거부터가 보통일이 아니었죠"

이 부회장은 이 길로 자동차로 영동에서 단양, 단양에서 영동을 오르내리며 코스를 기획한다. 자동차와 거리측정 자전거를 사용하기도 했고 굴곡이 심한 도로는 줄자로 직접 측정을 하기도 했다.

"선수들이 뛰었을 때 어느 정도 기록이 날지 직접 뛰면서 시간도 체크하고, 중학생들도 경기에 참여하니 아이들이 뛰기에 적절한 코스는 어디인지도 정해야하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이 부회장과 육상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영동과 단양을 잇는 314.24㎞의 코스가 완성됐다. 세계적인 선수를 발굴해 내겠다는 의지가 충북역전마라톤 30년 역사를 만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 부회장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것이 있다. 중부매일과 충북에서 길러낸 선수들을 현실적인 이유로 타 지역으로 보내는 등 끝까지 선수를 지키지 못했던 점이다.

"충북역전마라톤에서 발굴된 선수들이 전국대회를 휩쓰는 선수로 성장했어요. 그러나 현실적인 이유로 선수들을 타 지역으로 뺏기기도 하고, 선수를 위해 보내줘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마음이 너무 아파요. 어릴 적부터 애정을 갖고 가르친 지도자는 그 선수를 24시간 한시도 빼놓지 않고 시야에 담고 관리해요. 선수 습관, 관심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훈련시키는 것이죠. 선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데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어요. 물론 좋은 시설과 환경에서 훈련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전자의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 있어요"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해온 선수들이 팀을 옮기며 기량이 하락하는 경우를 지켜본 이 회장의 안타까운 마음이 녹아 있었다. 육상이 사람들에게 다시 관심받기위해서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스타선수가 필요하지만 앞의 이유로 그 기회를 놓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충북에서는 역전마라톤대회가 잘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충북역전마라톤을 통해 발굴된 어린 선수들이 지금도 어김없이 훈련장을 누비며 땀을 흘리고 있어요. 대회 초창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 명실상부 전국을 대표하는 마라톤대회가 됐으니 피겨의 김연아, 수영에 박태환처럼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선수가 탄생할 것입니다. 예전보다 선수수급 등 어려움은 많지만 저를 비롯한 지도자들이 헌신하고 있으니 충북도민 여러분이 조금만 더 관심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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