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속'과 '치유'의 밥상머리 교육
'결속'과 '치유'의 밥상머리 교육
  • 중부매일
  • 승인 2019.03.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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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가족들이 같은 식탁에 모여 함께하는 식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결속'의 식사, '치유와 화해'의 식사다. 결속의 식사는 래포(good rapport)를 통한 유대감의 확인이다. 문화인류학자 뮬러(Muller)에 의하면, 같이 음식을 나누는 것 자체가 결속을 의미한다. 치유의 식사는 갈등과 아픔을 보듬는 식사다. 성서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는 좋은 예다. 아무리 사회적 환경이 변한다할지라도 가족식사가 지니는 그 본래의 내재적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힌두교도들의 식사법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탈리'라고 하는 음식쟁반을 맨 가운데 놓고 집안의 가장이 북쪽이나 동쪽을 향해 앉는다. 그 다음에는 연장자 순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식구들이 앉는다. 식사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손만을 사용하며 식사 중에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이런 자신들만의 식사 의식을 통해 가족 공동체라는 의식을 다진다.

식사를 공유한다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청소년들의 비행과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사회는 가족 구성원들이 동시에 식탁을 공유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부모와 아이들이 모두 바빠졌다. 부모들의 맞벌이 비율은 현재 약 50%이지만 그 비율은 갈수록 더욱 증가할 것이다. 아이들도 공부에 바쁘다. 70~80%의 학생들이 사교육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환경이 가족식사를 어렵게 한다. 그렇다고 밥상머리 교육의 효과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이를 현대적 의미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 복원의 조건은 두 가지다. 위계적 밥상에서 '수평적 밥상'으로 전환시키는 것과 식탁공유에 대한 가족 구성원간의 '의식공유'를 확산 시키는 문제다.

전자의 문제는 밥상머리가 한 쪽으로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과거의 밥상머리는 완전히 기울어진 밥상머리였다. 어른들의 일방적인 훈계만이 있었다. 자녀들은 어른이 하는 말에 토를 달아서는 안 되며 순종하는 것만이 최고의 미덕이었다. 하지만 요즘에 이런 교육을 기대할 수는 없다. 밥상머리 교육이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더욱 진화되어야 한다. 교육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래포의 강화, 쌍방소통이라는 교육적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후자는 가족 구성원들 간의 친밀도 문제다. 가족 구성원들 간에 느끼는 신뢰와 애정의 문제는 식탁을 통해 쌓아 갈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식탁의 공유는 가족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의식공유의 문제다. 동일 공간에서 같은 식사를 나눔으로써 결속과 치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병선 문학박사·교육평론가
한병선 문학박사·교육평론가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결속은 가족 이기주의나 혈연중심의 폐쇄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 본연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인본적인 배려다. 나아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구축하는 문제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때 타인에 대한 사랑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정을 통해 인간사회의 질서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힌다. 인류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다. 유태인의 밥상머리 교육이 이스라엘의 민족교육, 삶의 지혜, 배려심을 배우는 전인교육으로 인식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미국도 '스타(STAR)' 밥상머리 교육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는 나라다. S는 'Spend', T는 'Talk', A는 'Answer', R은 'Recognize'이다. 자녀들과 식탁을 공유하며 답을 찾고, 부모 스스로가 아이들 문제에 대해 인식을 높여야 한다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도 밥상머리 교육에 대한 새로운 인식, 즉 '식탁위의 래포' 강화와 '유대감 공유'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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