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지난 3월 1일, 우리는 민족사와 인류사에서 영원히 기억될 3·1운동 100주년을 맞았다. 3·1운동은 일본식민지 지배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독립선언이요,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외친 인류사의 획기적인 사건이었음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3·1운동이 비폭력저항운동의 효시이며 전 세계 식민국가 중에서 전국민이 함께 독립선언을 외친 첫 사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비폭력 평화정신을 내세워 그것을 드러내는 행동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기미년 3·1운동은 우리민족 자존의 자의적 정신으로 전개되었으며 조국의 독립과 민족근대사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전국에서 남녀노소 각계각층이 일제의 총칼을 두려워 하지 않고 만세운동에 나섰다는 점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지난 1일 오후 2시 제천 시민광장에서 제천문화원 주최로 많은 시민들이 함께하여 3·1 독립선언의 정신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가졌다. 식전행사에 이어 본 행사로는 국민의례, 3·1절 노래, 독립선언문 낭독, 만세삼창, 인문학 공연, 의병송, 제천시찬가 제창 등이 진행되었다. 어린이들로부터 어른들까지 하나된 마음으로 태극기를 손에 손에 들고 3·1절 노래와 만세삼창을 부르는 순간 다시한번 나라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독립선언문 낭독과 보이스 아티스트의 인문학 공연 또한 우리의 마음에 나라사랑에 대한 의지를 다잡는 기회가 되었다.

이번 3·1 절 100주년 기념행사를 통하여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제천출신 독립운동가 우덕순 의사가 계셨다는 사실이 우리지역과 지역민들에게 자긍심을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무관심하였다는 점에서 죄책감마저 들었다. '제천출신 우덕순 연구'(제천문화원)라는 책에 의하면 제천출신 우덕순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의사의 하얼빈 의거 때 뜻을 함께 했던 독립투사였다.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우덕순은 바로 전 역인 채가구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렸으나 이토 히로부미는 채가구 역을 지나 하얼빈 역에서 내려 안중근의사에게 저격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덕순 의사는 하얼빈 의거에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을사늑약이 강제된 1905년을 전후하여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 의병활동에도 적극 참여한 인물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우덕순은 단양 우씨로 제천태생이었으나 4~5세경 서울로 이사 가서 1908년경 상동청년회에 가입하게 되면서 항일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우덕순이 하얼빈 의거에 참여 할 수 있었던 계기는 안중근과 함께 의병활동을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우덕순은 안중근과 함께 이범윤 의병부대에서 국내진공작전을 펼치는 등 활발한 의병활동을 전개했다. 이즈음 연해주로 망명한 유인석도 이범윤과 연계하여 의병활동을 했다. 따라서 이범윤 의병부대의 일원으로 의병활동을 하고 하얼빈 의거에 참여하였던 우덕순은 연해주에 있는 제천의병의 후예인 것이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이제 우리는 삶의 한복판에서 3·1운동 100년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 우리의 자존감 신장은 물론 자랑스런 우리나라가 더 번영하여 우리의 삶의 질이 조금 더 신장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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