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선이 자유자재로 그려져 있는 사발 두개를 얻었다. 단아하고 은근한 때깔이 눈길을 끈다. 물레 앞에서 혼신을 다했을 도공의 손놀림이 그릇 속에 묻어왔다. 둥그런 모양새에 얇은 굽, 허리께도 적당히 불러있다.

그릇 속에는 그릇을 빚었을 도공의 숨결이 들어있다. 그릇을 만드는 사람이 곧 쓰는 사람이라고 믿는 장인의 정직한 손끝에서 태어났다. 수수한 인상의 도예가 성품이 담겨있는 듯 은근한 빛깔의 사발에는 서민들의 질박한 이야기가, 가마솥에서 금방 푼 따끈따끈한 밥이 담겨있어야 어울릴 듯 하다.

그릇으로 친다면 나는 어떤 모양일까. 내가 좋아하는 아담한 찻잔도 아니고 고운 빛깔의 와인이 담기는 투명한 크리스털 잔도 아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막사발이나 될까. 막사발도 본래의 때깔을 잃어버린지 오래이다.

아이들이 있기 전에는 문양이 있고 기품 있는 귀족취향의 고급 찻잔이 되고 싶었다. 막사발보다는 명품자기가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자식을 낳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는 어떤 크기이건 간에 모든 걸 담을 수 있고 어디서나 어울릴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엄마다운 것이었다.

엄마란 위치는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니다. 뜨거운 솥단지에서 곰탕을 만들 듯 단련되어야 한다. 꽉 찬 알갱이처럼 완전한 엄마가 못될지라도 쭉정이 날려 보내는 키질에서도 버텨야 하는 자리 아니던가. 하지만 매번 부족함을 절절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진국인가 하고 곰솥 뚜껑을 열어보면 냄새가 나거나 설 끓이기도 했다. 지나고 보면 쭉정이 속에 알맹이도 섞여나가 후회하기도 한다.

사람의 인품과 인성을 그릇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한 나무에서 핀 꽃인데도 열매를 맺으면 제각각이듯 뱃속에서 똑같이 있다가 일분차이로 태어난 쌍둥이라도 성격이 다르다. 그림을 그리는 것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주저하지 않고 대담하게 쭉쭉 그린 다음 대충 색칠하는 딸아이는 외향적이고 대담하다. 스케치북을 앞에 놓고 머릿속으로 구도를 잡은 다음 꼼꼼하게 밑그림을 그린 후에야 색깔을 입히는 아들은 차분하고 감성적인 편이다.

성격도 틀리고 취향도 다른 아이들에게 똑같은 결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이리라. 그릇이 커야 많이 담을 수 있어 큰 동량이 된다고 하는데 자식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지 않고 아이들 능력에 맞는 만큼만 기대하기를 소망해 본다.

그래도 어미로서 바라는 바가 있다면 순도 높은 백색의 자기보다는 가장 흔한 재료로 쉽게 만들 수 있는 막사발 같은 그릇이었으면 한다. 거기다 한 가지 욕심을 보탠다면 정교한 기법과 다양한 색채가 있어서 어디에서나 어울린다면 무엇을 바랄까.

노란색 국화꽃을 꺾어들고 선물이라고 내미는 딸. 사발에 꽂아서 장식장위에 놓았다. 진한 국화 향기가 방안을 감돈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막사발은 이래서 좋다. 밥이나 국도 담을 수 있지만 꽃을 담고 있어도 어울린다. 농부같이 투박하고 소박한 사발은 막걸리를 담아서 마시면 서민의 그릇이 되고 이도다완처럼 문화적 국가의 자긍심을 보여주는 자기(瓷器)도 된다. 이도다완이라 불리며 보물로 대접받는 조선시대 찻사발처럼, 평범하고 수수하지만 품위 있는 사람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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