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규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아니 얘야, 너 걸음걸이가 왜 그러냐?

어디 불편하니?"

"엄마, 다리가 찌릿찌릿 아파요."

어머니는 이장네 리어카를 빌려 오리길(2㎞)을 내달렸다.

면소재지에 하나밖에 없던 한약방을 사람들은 집도 사람도 봉약국이라 불렀다.

칠남매 늦둥이 막내를, 공부는 도회지 가서 해야 한다며 초등학교 입학부터 청주 큰며느리한테 맡기고는, 본데없어지고 약해지면 안 된다고 여름방학에 오면 땡볕에 밭을 매게하고, 겨울방학 때는 눈덮힌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라며 지게를 지웠다.

그해 6학년 여름에도 엄마와 함께 고추밭, 콩밭의 잡풀을 뽑느라 여러 날을 쪼그렸더니 골반쪽에 무리가 갔었나보다.

어린나이에 좌골신경통이라니!

"선생님,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 아픈데요?"

"하하하, '왼 좌'가 아니고 '앉을 좌'란다. 과연 유학생답구나."

침이 들어올 때마다 어금니를 악물고 인상을 쓰다 보니 이마와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했다.

환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벽을 보게 세워놓고 발뒤꿈치에 놓는 대침에 비하면 살짝 따끔할 뿐이라는 선생님의 격려말씀이 꿈에 나타날까 되레 두렵기만 했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대파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소고기뭇국을 끓여주셨다.

"이제 다시는 밭에 나가지 말거라."

책상물림으로 거의 매일 도서관을 찾다보니 그놈의 좌골신경통이 46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것 같아 오늘은 날 잡아 세 곳의 병원을 다녔다.

봄도 왔겠다 입 벌리고 많이 웃으려고 치과 가서 스케링도 하고, 비뇨기과에 가서 전립선도 돌보고 신경외과서 물리치료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병원 쇼핑을 한 셈이다. 병원에 가보면 왠 아픈 사람이 그리도 많은지.

하긴, 의사의 진단을 신뢰하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며 진단을 받는 '닥터쇼핑'이나, 이 병원 저 병원을 비교해보고 쇼핑하듯이 과잉진료를 즐기는 이른바 '의료쇼핑'까지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지난해 말 그랜드캐년서 추락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던 대학생이 다행히 의식을 찾고 며칠 전에 돌아왔다.

2014년에 갔을 때도 난간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있어서 불안불안 했었다.

모 항공사의 도움으로 6개의 좌석을 연결한 환자용 침상에 누워 귀국은 했지만 10억원에 가까운 병원비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란다.

예전에 어떤 배우가 미국서 뇌출혈 수술을 받았는데 병원비가 5억이 나왔더라는 일화를 공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여 년 전에 미국 갔던 친구가 맹장수술비로 1천만원을 냈다기에 '에이, 설마' 했었는데 알아보니 지금은 2천만원이 든다고 한다.

물론, 재정능력이 없거나 유학생의 경우에는 상당부분 손실처리를 하기도 한다지만, 흥청망청하는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과유불급(過猶不及-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이라 하지 않았던가.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옛날 어른들께서 "하얀집에는 가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유난히도 높고 긴 흰 담벼락에 잠긴 교도소와 온통이 하얀 병원을 말함이었는데 '언덕 위의 하얀 집(정신병원)'은 더더구나였다.

"환자에서 환(患)이 '아플 환' 이잖아요. 자꾸 환자라고 하면 더 아파요."

어머니 떠나가신지도 어느새 36년이 지났다.

집에 돌아와 수십년째 창고에 두고 있는 호미도 꺼내보고, 스마트폰으로 소고기뭇국을 찾아서보고는 소리 내어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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