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주변에 변호사 선배들을 보면 중년의 멋이 한껏 오르신 분들이 많다. 온갖 달고 쓴 인생을 두루 섭렵하였다는 징표로 생긴 깊은 주름과 희끗한 머리카락조차 닮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분들이다. 어쩌면 그 미소는 부처의 그것과 한껏 닮아 있다.

세상에 맛없는 음식이 없었던 필자는 근래 일일일식(一日一食)을 하고 있다. 일일일식의 이유가 어디에 있던 간에 어느덧 중년에 이른 몸관리 일환으로는 꽤나 괜찮은 방법이다. 사라졌던 복근의 흔적(복근 말고 진짜 흔적 말이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생전 바르지도 않았던 남성용 화장품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대충 세수할 때 세숫비누로 처리하던 모발세척을 무려 컨디셔너를 사용하여 마무리하기 시작하였다.

이와같은 변신(?)에 여러 원인이 제시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업계 선배들처럼 꽃중년이 되기보다는 아직 파릇한 청년으로 남고 싶은 욕심의 발로일 터이다. 딸들은 아빠라 하면 무릇 흰머리 나고 푸근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왜 아이돌처럼 되려하느냐며 변신을 위해 노력하는 필자에게 과한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아직 선배 변호사님들만큼 인생살이가 덜 고단하여 꽃중년으로서 인생의 진한 향기를 품을 정도가 되지 못하였고, 그분들 보다 더 많은 인연을 접하지 못하여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니, 필자의 욕심은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현명한 일시 후퇴라 하는 편이 오히려 타당한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던 가운데 흰 머리카락이 생겨났다. 혹자는 그 나이에 몇 가닥 흰 머리카락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필자가 그대로 빼닮았다고 하는 조부께서 백살 즈음에 소천하실 때까지 머리가 검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필자의 놀라움은 그다지 예민한 반응은 아닐 것이다.

비오는 날 시내버스에 우산을 두고 내렸을 때, 우산을 찾기 위해 비속을 뚫고 한 정거장 정도는 달려가 찾을 수 있었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몇날몇일이고 밤을 새우며 관련 서적을 뒤적거려도 눈에 생기가 돌던 필자가 이제는 헬스장 자전거 고작 몇 분에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고, 소송서류 몇 권을 검토하면 눈이 침침해져 오기 시작하였다.

아는 것은 큰 진전이 없는데, 흰머리카락이 하나둘 늘어가고 믿었던 신체의 강인함이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것을 보면서 대략 천년 전 즈음에 썼음직한 주자의 칠언절구시가 떠오른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 / 순간순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 연못가의 봄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이 가을을 알린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면서 단기필마로 어디까지 이르는지, 무엇을 이루는지 보여주겠다던 결기는 어느덧 쉽게 늙어(易老) 다짐으로만 기억되고, 흰머리카락 나기 전에 이르고자 했던 법조계에서 일가성취는 아직 다다르지 못한 듯하다(難成). 변호사의 업무란 그 불성취가 단지 변호사의 아쉬움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고 의뢰인의 현실적인 불이익을 의미하기 때문에 다만 그들의 불편함이 두려울 따름이다.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소년이 이로(易老)하지 않음을 입증하거나, 그깟 학문따위 이뤘음을 확인하면 될 일이런가. 마음을 곧추세워 늙음을 경계하고 변호에 정진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곁에 쌓여있는 소송서류를 들추면서 더욱 세심히 검토하려 한다. 특히나 난성(難成)한 이 법조 바닥에서 의뢰인의 안정을 찾아주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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