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묵은 한국의 맛 ... 맹맥 이어가야죠"

조정숙 식품명인. / 중부매일DB
조정숙 식품명인. / 중부매일DB

[중부매일 이규영 기자] 지난해 12월 충북도에서 3번째, 전국에서 78번째로 식품명인이 탄생했다. 조정숙(60) 청주 내수면 우산리 다농식품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조 명인은 500년 이상 내려오는 초계 변씨 집안 시모(김명분·94)로부터 전통장류 제조기술을 보전·계승하고 있다. 명인이 되기까지 조 명인의 '장류인생'에 대해 알아봤다. 


조정숙 명인의 전통장류 담기는 지난 1992년 시작됐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국가지정전통식품으로 지정받은 시부 변종화 옹의 메주사업을 이어받으면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판매량이 저조한 메주를 장으로 담기 위해 마을 인근 항아리를 모두 모았다.


"시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시더니 '메주도 다 팔지 못하는 판국인데 장을 팔아 어쩌겠냐'고 걱정도 하셨습니다. 저는 '오가는 사람, 이웃, 아는 사람이 이 메주로 만든 장을 한 번 맛보면 두 번 더 오지 않겠냐'고 되물었죠. 새마을호 사업으로 집 한편에 쌓여있던 오래된 항아리들이 저희 집으로 모였어요. 모두 70~100년 이상 묵은 오래된 물건이었고 이 항아리를 이용해 장을 담아 냈어요."


이듬해인 1993년, 조 명인과 시모는 충북 농특산물 판매 5일장에 참가해 놀라운 실적을 올렸다. 5일간 50만원 어치만 팔아보자던 목표였지만 첫날 오전 중에 장이 모두 판매됐다. 알배추와 함께 제공된 강된장을 먹고 사람들은 "정말 맛있다"며 호응했다.


조 명인의 아이디어는 판매 방법에도 담겼다. 일반적으로 나가는 플라스틱 용기가 아닌 조그마한 항아리에 장을 소포장해서 넣겠다는 것이었다. 조 명인은 남편 변익수(61)씨에게 가장 예쁜 항아리를 모아 차에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5일간 조 명인의 장은 500만원 어치의 판매 수익을 올렸다. 이후 시부 변종화 옹과 함께 농협 창동직판장(현 하나로마트)을 시작으로 한살림 등에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아버님은 일을 해 오신 평생 농촌사랑이 남달랐습니다. 머슴을 5명씩 두고 일하셨는데 '다 같이 잘 살자'는 마음으로 항상 잘 대해주셨죠. 1996년 가업을 승계하시면서도 사람에 대한 정을 항상 생각하라고 하셨어요."


조 명인의 공장에는 9명의 상주직원이 있다. 장년에서 고령층의 나이다. 용역업체를 통해 젊은 사람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조 명인은 거부했다. 돈을 조금 더 벌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또 전통장류를 만드는 손맛은 어르신들이 가장 잘 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 명인의 공장은 장아찌 등 절임류가 만들어지는 5~6월, 수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1년 판매량을 한꺼번에 만들기 때문에 마을 인근 90여 명을 넘나드는 어르신들을 모두 고용한다. 보름간 이어지는 작업은 마을의 큰잔치로 불리기도 한다. 이 때 원료는 콩 40톤, 마늘은 15~20톤, 오이는 50만~60만개까지 투입되기도 한다.


조 명인은 장류를 만드는 비법에 대해 '오래된 항아리'를 강조한다.


옛날 항아리는 안과 밖을 매질한다. 점토를 줄처럼 둘러 속을 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약을 덜 발라낸다. 


"옛날 항아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발효가 더 잘되기 때문이에요. 장이 더 맛있게 익죠.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한 항아리가 어느 새 1천개가 넘게 모였습니다. 자식같은 항아리들로 만들어진 장, 가장 한국적인 음식으로 명인이 돼 더욱 기쁩니다."


그는 명인이 되고자 하면서 '체계화'되지 않은 전통장류의 제조법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초계 변씨 집안에서 100년 내림음식인 장. 그러나 식품명인으로 인정받기엔 비법 등의 특이성이 없고 너무도 한국적이며 평범하지 않겠냐는 지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조 명인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명인 음식에 선정돼야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특히 그는 '장을 담는 기법'을 설명하면서 그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소금물을 항아리에 붓는 것은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지만 짚을 묶어 거품을 탁탁 친다. 그러면 소금물이 깔끔하게 가라않는다. 또 그는 항아리를 소독할 때 짚불을 넣기도 한다. 짚이 은근히 타면서 매우 높은 열기를 내기 때문에 항아리 안에 남아있던 좋지 않은 미생물이 사멸된다.


특히 조 명인은 장을 담을 때 시모의 '시간장'을 쓴다. 그만의 비법 소스인 셈이다. 소금물에 시간장을 함께 넣으면 촉매제 역할을 하면서 장이 익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간장도 액체이기 때문에 오래되면 증발돼 날아간다. 이를 지키고자 조 명인은 그만의 보관함을 만들어 냈다. 큰 항아리에 소금을 넣고 시간장을 그 위에 보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매년 20%씩 줄어들던 시간장의 소모를 막을 수 있었다.

그가 식품명인 지정을 위해 걸어온 시간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그러나 막상 명인이 되고 나니 그 즐거움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대표 명인이라는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명인이 되고 인생 2막이 펼쳐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척 바빠졌지만 좀 더 부지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타인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부담감도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나 장류를 만드는 방법에서 변하지 않는 철학이 있다면 기본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기교를 부리거나 멋을 내도 전통 장의 맛은 좋은 것이 나올 수 없어요. "

앞으로 그는 공장부지 내에 박물관을 건설할 계획이다. 전통장류를 체험하고 맛볼 수 있는 장소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해 한국의 전통을 체험하고 장에 대한 문화를 알리고 싶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전통식품 계승·발전 이끄는 '식품명인' 돕는다

 

한국전통식품문화관 '이음' /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제공
한국전통식품문화관 '이음' /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제공

 

[중부매일 이규영 기자] aT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우수한 우리 전통식품의 계승·발전을 이어나가는 식품명인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식품명인전수자 장려금'을 지원, 소득 불안정 등 전수여건이 열악해 전수자 양성에 어려움이 있는 곳을 돕는다.


식품명인제도는 우수 식품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식품 제조·가공·조리 등의 분야에서 명인을 지정하는 것으로 20년 이상 한 분야의 식품에 정진했거나 전통방식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자, 또는 명인으로부터 보유기능에 대한 전수교육을 5년 이상 이수받고 그 후 10년 이상 그 업에 종사한 자가 선정된다.


aT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식품명인의 가치와 위상을 높이기 위해 식품명인의 공식명칭을 '대한민국 식품명인'으로 하는 등 국가적인 자산으로 관리해 나가고 있다. 또 식품명인을 알리기 위한 식품명인체험홍보관을 조성하고 전수자 등의 역량제고를 위한 교육사업을 진행한다. 


식품명인체험홍보관은 한국전통식품문화관 '이음'에 위치해 있다. '이음'은 국내 전통식품의 맛과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농림축산식품부, aT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세운 한국전통식품 홍보공간으로 식품명인체험관은 2·3층에 구성돼 있다. 이곳에서는 명인 및 명인제품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전시·홍보하고 식품명인 체험프로그램 운영, 명인제품 활용 쿠킹클래스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진행한다.


aT 충북지역본부 신익섭 본부장은 "식품명인은 해당 전통식품 제조(조리)기능의 전통성 및 해당 분야의 경력을 인정받아야 하고 계승 및 보호가치가 높아야 하며 산업성과 윤리성 평가를 받아야 하는 등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사람들"이라며 "신규 지정된 식품명인들이 우수한 우리 전통식품의 계승·발전을 위해 언제나 자긍심을 가지고, 식품명인의 위상에 맞게 활발한 활동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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