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박현수 충북다양성보존협회

요즘 봄바람을 미세먼지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김없이 풀들은 여린 꽃을 피었고, 나무들은 자신들의 일과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초록으로 가득한 시기가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살아있게 만들어주는 식물의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으로 식물의 삶은 단순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속속히 들어다 보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삶을 살아갑니다.

토마토는 화단에 쉽게 만날 수 있는 식물입니다. 토마토는 멀고 먼 남아메리카 안데스 고원이 고향으로 16세기 스페인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200년이 넘도록 독이 들었는다는 오해로 먹지 않고 화초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WHO가 선정된 10대 건강식품으로 인정받고 누구나 즐기는 채소가 되었습니다.

토마토 열매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꽃에 얽힌 이야기는 더 신비롭습니다. 토마토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꽃가루를 채취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술이 꽃 안쪽 씨방에 숨어 있어 꽃가루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약 350 헤르츠 진동이 있으면 수술의 꽃가루가 후드득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개체인 벌이 윙윙 진동하는 날갯짓을 하며 토마토 꽃에 가까이 가자 꽃가루가 나오는 것을 본 것입니다. 토마토는 자신이 힘들게 만든 꽃가루를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동물에게 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선택을 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활용한 것입니다.

토마토를 잡는 식물도 있습니다. 바로 실새삼이라는 기생식물입니다. 실새삼은 무심천이나 밭에도 자주 만날 수 있는 식물로 뿌리 없이 덩굴로 자라 다른 식물의 줄기에 매달려 양분을 빼앗아 살아갑니다. 어린 실새삼은 여린 감는 줄기를 내는데 이때 당분이 많고 줄기가 여린 토마토가 제격이라 실새삼은 토마토를 찾아다닙니다. 실새삼은 여러 식물 속에서 어떻게 토마토인줄 알고 덩굴 줄기를 다가가는지 실험을 했습니다. 양쪽으로 진짜 토마토와 토마토에서 추출한 토마토 향을 담아놓았는데 실새삼은 진짜 토마토에 가지 않고 토마토에 추출한 향이 나는 곳으로 줄기를 뻣었습니다. 식물의 덩굴손이나 잎은 감각의 역할을 하는데 빛의 여부, 식물의 향, 그리고 높이, 방향 등을 아는 기관이 숨겨져 있습니다.

땅바닥에 피어나는 작은 봄풀들의 꽃도 신비로움을 갖고 있습니다. 큰개불알풀이라는 큰봄까치꽃도 들판에 보랏빛 꽃들을 가득 피워내는데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올 듯하면 꽃을 닫아 버립니다. 꽃가루가 비에 맞는 것을 피하는 방법인데 이외에도 냉이, 꽃다지, 개망초 꽃들도 이러 방법을 활용해 자신의 꽃을 보호합니다.

박현수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숲해설가
박현수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숲해설가

지금 쯤 생식줄기를 꼿꼿하게 세운 쇠뜨기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보통 식물과 다른 번식 방법을 쓰는데 종자가 아닌 포자를 날려서 번식을 합니다. 뱀무라고 불리는 면봉처럼 생긴 생식줄기에는 파란색 포자가 가득 숨어있는데 건조하고 봄바람이 부는 날 순간적으로 날립니다. 근데 이 포자에도 숨겨진 구조적인 전략이 있습니다. 다른 포자와 달리 포자에 4개의 탄성이 있는 실이 달려 있는데 이 실을 뭉쳐놓았다 날아갈 때가 되면 탄력이 있는 실을 쭉 피면서 튕겨져 나갑니다. 더 멀리 가기 위한 방법인데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자세히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식물들이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갖고 살아갑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몰라 하찮게 잡초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다른 생명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즐거운 방법입니다. 지금도 다양한 생명을 관찰하며 이야기를 정리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봄날 도서관 순수과학 쪽에서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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