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진화 / 최승호

상아 없이 태어나
어린 코끼리는
아무 쓸모없는 가죽나무처럼
걸어가야 한다

커다란 귀 너펄거리는 할머니 코끼리를 따라

밀렵꾼이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아프리카
긴 가뭄 속으로

아무 쓸모없는 가죽나무처럼
걸어가야 한다
상아 없이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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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일 시인.
최호일 시인.

인간에게 있어 코끼리의 존재는 상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더구나 상아 판매상에게는 코끼리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아 없이 태어난 코끼리는 그냥 걸어 다니는 가죽나무에 불과하다. 노래나 영화 한 편을 성공 시키면 일평생 돈과 명예를 움켜쥐는 연예인들에 비해, 시인은 상아 없이 태어난 코끼리인지도 모른다. "커다란 귀 너펄거리는" 언어의 "할머니 코끼리를 따라" 다시 오래 생각해 봐도 그렇군. / 최호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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