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추억은 고장난 시계처럼 그 시절 그 시간에 그대로 멈춰 서 있다.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마루바닥 낡은 목조건물 교실에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할 때다.'라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던 아침자습시간, 선생님께서 '파월 장병아저씨께' 보내는 위문편지를 쓰라고 했다. 열 살짜리 아이들은 손가락 마디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연필심 꼭꼭 눌러 가며 정성스레 편지를 썼다.

시끌벅적 소란한 교실은 쇳소리 나는 탁상용 종을 땡땡 두 세 번 쳐야만 조용해지곤 했다. "너희들이 보낸 위문편지에 답장이 왔어요. 선생님이 한번 읽어 주겠어요." 뜻밖에도 그 편지는 나에게 온 것으로 많은 아이들 속에서 선택 되었다는 으쓱함과 가슴을 콩콩치는 떨리는 기대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어린 네가 보내 준 편지가 무더운 나라 열사의 땅 월남에서. 긴장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전쟁터의 아저씨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었는지 모른다. 아저씨에게도 너 만한 아들이 있단다. 그것도 네가 다니는 은로국민학교 3학년 000.' 편지를 읽어주시던 선생님과 나, 우리 반 아이들 모두 깜짝 놀라 얼음이 되었다. 당시 계급이 소령이셨던 그 분의 아들이 바로 그 자리에 우리와 함께 앉아 월남에 계신 아버지가 보낸 위문편지 답장을 듣고 있는 같은 반 친구였으니 기이한 인연 이었나보다.

위문편지로 만난 특별한 만남으로 엄마들끼리는 서로 인사 나누며 지내셨고 그 후로도 성 소령 아저씨와 나는 주디와 키다리아저씨처럼 꽤 오랫동안 편지가 이어졌다. 해 마다 국군의 날이 되면 위문편지와 성 소령 아저씨. 같은 반 친구가 생각나는 어린 날의 소중한 그리움 한 자락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어릴 땐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던 수줍던 꼬마친구들이 인생의 가을 들녘에서 다시 만나 편안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아저씨의 안부를 묻고, 들으며 어느새 초등학교 3학년 낡고 오래 된 교실 한켠에 앉아 흑백사진 속 추억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며 퍼즐그림을 맞추고 있었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살아계실 때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 어린 꼬마숙녀가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어 성 소령 아저씨 댁으로 향한다. 나보다 더 또렷이 그때를 기억하시며 젊은 날 전쟁터의 무용담을 이야기 해주셨다. 오래 간직하고 계시던 편지를 이사하는 과정에서 분실된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셨고 말씀 중에 간간이 목울음을 삼키시며 우리 만남을 감격해 하셨다.

대령으로 예편하신 아저씨께서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계셨지만 월남전 참전으로 얻은 안보와 경제개발의 원동력이 되었던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조국과 겨레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내 놓는 심정으로 전쟁터로 가셨단다. 그 불타는 애국심들이 오늘 우리를 이곳에 있게 한 것이리라. 전장의 후유증으로 자다가도 깜짝깜짝 놀란다는 노병의 파월장병아저씨들께 드리는 감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조만간 성 소령 아저씨를 다시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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