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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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부매일
  • 승인 2019.04.0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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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이종완

나와 무관하게만 여겨졌던 퇴직이 화창한 봄날의 미세먼지처럼 왔다. 작년 연말 퇴직을 한 후 나도 예외 없이 가슴앓이를 겪었다. 출근할 곳이 없어져 생기는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심란했다. 경제활동의 주류에서 밀려났다는 박탈감이 시시때때로 올라와 쓸데없는 열등감으로 우울했다. 퇴직 후 어떻게 살 것인지를 미리 설계하고 준비하라는 인생선배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못한 자격지심에 고통스러웠다.

퇴직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도록 이끌었다. 삶의 방식과 패턴이 회피하기로 굳어졌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지나치게 강한 탓에 눈치 보는 삶에 급급한 나머지 진정한 나로 살지 못했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발견하기와 자아를 굳건하게 하는데도 게을러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며 살아왔음을 직면하게 되었다. 삶을 복기하는 회심(回心)의 시간을 통해서 받아든 인생의 성적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불만족스러웠다.

삶에 대한 통찰이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해 '진짜 나'로 살지 못하고 '가짜 나'로 살게 만들었던 가면을 벗으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회한(悔恨)을 남긴 삶의 궤도와 방식을 수정하라고도 주문했다. 진정한 사람 되기는 진짜 나로 살아갈 때 완성된다는 생각에서 인생2모작을 늦깎이 대학원 새내기로 출발하였다. 새내기 일상이 내게 새로운 분야를 배운다는 설렘과 기대와 희망의 긍정에너지로 퇴직의 침통함을 극복하게 해주고 있다.

인생의 변곡점인 대학원 생활에서의 감동적인 일은 정신과의사이며 작가인 Irvin D.Yalom의 삶과 작품세계를 만났다는 점이다. 심리상담 분야의 대가(大家)인 작가의 최신작 'Becoming Myself'를 접하면서 정직과 정성의 가치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되새기게 되었고, 수치스러운 경험까지도 속이지 않고 솔직하게 담아내는 자기개방성과 진정성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86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정열적이고 의욕적으로 매일 3~4시간 글쓰기를 하며 심오한 삶을 살고 있는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읽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삶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들의 얼개로 이루어진 건축물이다. 삶이란 건축물의 토대를 자신과 사람에 대한 이해로 빈틈없이 채워야 한다. 인생의 집은 '나는 누구인지, 나는 왜 사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질문하고 답하는 애씀으로 만들어진 벽돌로 완성된다. 나만의 집을 지으려면 내 정체성을 발견하고, 내 존재 의미를 찾고, 내 존재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이란 벽돌을 건너뜀 없이 치밀하게 쌓아야 한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나는 무엇을 건너뛰며 살아왔는지 박노해 시인의 '건너뛴 삶'이란 시를 떠올리며 되짚어보고 퇴직 후 인생의 집을 설계한다. "오늘 해결하지 못한 고민들은 시간과 함께 스스로 물러간다. 쓸쓸한 미소이건 회한의 눈물이건/하지만 인생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건너뛴 본질적인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담요에 싸서 버리고 떠난 핏덩이처럼 건너뛴 시간만큼 장성하여 돌아와 어느 날 내 앞에 무서운 얼굴로 선다./성공한 자에겐 성공의 복수로 패배한 자에겐 붉은 빛 회한으로/나는 내 인생의 무엇을 해결하지 못하고 본질적인 것을 건너뛰고 달려왔던가. 그 힘없이 울부짖는 핏덩이를 던져두고 나는 무엇을 이루었던가.(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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