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윤희 수필가

太朴 / 신철우 作

충격이다. 서예가라더니 여느 서예전시회와는 다르다. 분명 먹빛이 놀고 있는데 글씨가 아니다. 범종이 있고, 빗살무늬 토기가 있다. 아니 글씨가 있다. 서예전이 맞나본데 아주 생경한 풍경이다. 어릴 때 살던 우리 집 다락방에서 맡던 묵은내가 울컥 살아난다. 곰삭은 묵은지에서 뭉근하게 우려져 나와 똑 쏘는 맛이 코끝에 매달린다.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다양한 먹을거리가 넘쳐나고, 매일매일 새로움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 시점에 왜 하필 군둥내 나는 묵은지에 입맛이 당겨지는 것일까.

모처럼 한가로운 마음으로 문학관에 나와 노트북 모니터와 눈정을 주고받고 있는데 반가운 전화 한 통이 걸러온다. 지금 종박물관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려 보러 가는 중이란다. 진천에 오게 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라는 말이 고마워서 나도 그쪽으로 나가마했다. 7분 후면 도착 한단다. 작가가 직접 와서 작품 설명도 해 준다는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전시 내용은 둘째 치고 오는 사람 얼굴 한 번 보자는 마음으로 서둘러 자동차를 몰았다.

전시장 입구에 일행이 오밀조밀 모여 작가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제 막 시작 되었나 보다. 그들 틈으로 살그머니 몸을 끼워 넣으려니 몇몇이 눈인사를 건네 온다. 서예작품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잠시 묵향이나 맡아볼 수 있을 듯하여 우선 눈을 들어 전시장을 한 바퀴 휘, 둘러보았다.

'어라, 이게 뭐지?' 놀라운 풍경이 전개되었다. 서예전이 아닌가. 호기심이 일어 작가의 말에 귀가 쫑긋해졌다.

'침묵의 역사'라는 작품 앞에 섰다. 수백은 될 듯한 먹빛 부처상을 배경으로 가운데에 신라 범종이 자리하고 있다. 한지에 그린 그림인 듯 종이의 결은 그대로 살아있는데 그림이 아니다. 용뉴와 연곽, 연뢰의 올록볼록한 윤곽이 톡톡 불거져 생생하다. 분명 부조 작품이다. 종의 상대부분에는 김삿갓의 詩가 음각되어 있다. 종신의 비천상 또한 날아오를 듯 또렷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부처 역시 도드라진 부조상이다. 흙과 먹, 돌가루, 기타 재료가 정교히 조화롭게 합일을 이루어 빚어낸 조각 작품에 한지를 올려 탁본기법을 활용했다한다. 0.1~0.2㎜ 정도, 하도 얇아 부조라기보다 그냥 한지 위에 그려진 그림 같다. 하지만 다시 보아도 독특한 조각품이다.

항아리 / 신철우 作

살짝 기운 범종은 지금 막 당좌 한 번 치고 난 직후 종의 미세한 흔들림을 표현한 듯 떨림이 느껴진다. 종신 옆으로 글씨가 빼곡하게 음각되어 있다. '아 신화 같이 다비데군들' 신동문의 詩다. 신동문 시인은 1950~60년대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현실 비판 시를 쓰다 절필한 우리 충북 문단의 초석 아니었던가. 문화유산인 신라의 범종에 피맺힌 절규 4.19 혁명의 시를 나란히 들여놓다니. 발상의 전환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수필가들이 추구해오고 있는 '대상에 대한 낯설기'를 여기서 볼 줄이야. 머리가 띵해온다. 깊고 은은한 범종의 울림에 김삿갓 시의 차용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손아귀에 돌 벽돌알 부릅쥔 채 떼 지어 나온 젊은 대열, 신화 같이 나타난 다비데군들이라니. 의식도 역사성도 어느 것 하나 공통됨이 없어 보이는 범종과 근·현대 암울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같은 자리에 펼쳐 놓았다. 이 이질적인 물성을 접목하여 하나의 예술품으로 이끌어 낼 생각을 하다니. 조화가 절묘하다.

웅혼(雄渾)! 신철우 작가는 어쩌면 신화 같이 다비데군이 되어 시 구절구절을 음각 했는지도 모른다. '멍든 가슴을 풀라, 피맺힌 마음을 풀라, 막혔던 숨통을 풀라, 포박된 정신을 풀라' 탁본하듯 한 땀 한 땀 가슴을 두들기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새로운 예술 분야의 길을 그렇게 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빗살무늬 토기는 '빗살이 아닌 빛살'로 표현했다. 서예와 선사시대의 유물이 혼재되어 있다. 때론 주인공처럼 두드러져 보이다가 또 때론 슬쩍 뒤로 빠져 그대로 희미한 배경이 되어 준다. 서로간의 배려요, 존중이다.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다. 사람살이의 이치도 이만하면 악다구니 같은 다툼은 덜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 맑은 햇빛, 교교한 달빛만이 아름답다 할 것인가. 저녁노을이 지고 난 뒤 먹빛으로 젖어드는 어둠이 더 고울 수 있다는 것을 예서 본다. '항아리'란 작품 앞이다. 유년시절 어두컴컴한 부엌에 머물던 무쇠 솥과 부뚜막에 앉은 재티, 그을음의 빛깔을 본다. 엄마의 무채색 광목 치맛자락에 일던 그리움, 예의 빛이다.

웅혼은 흙, 은은히 젖어드는 한지의 숨결, 가장 부드러운 붓을 통해 강인한 인간의 의지를 담고 있다. 글씨에서, 토기에서, 범종의 깊고 그윽한 울림이 번진다. 진천의 종박물관에 묵향과 함께 무위자연이 노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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