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강원산불 / 연합뉴스
강원산불 / 연합뉴스

지난 4일부터 사흘간 강원도 북동부 5개 시·군에서 일어난 초대형 산불은 자연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재난이었다. 태풍급 강풍으로 빠르게 번지면서 순식간에 산림 530㏊에 주택 400여채가 불타 이재민만 3천600여명이 발생했다. 수천억대로 추산되는 재산피해도 컸지만 무엇보다 산에서 번진 화마로 인해 도시민 삶의 터전까지 위협 당하는 공포가 우리의 현실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대규모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대피하고 운행중인 버스가 전소되는 등 우리가 지금껏 생각하지 못한 수준의 재난이 닥친 것이다.

소방당국의 발빠른 대응과 주민들의 헌신 덕분에 더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지만 이번 강원산불은 재앙으로 비화될 뻔했다. 여기에는 최대풍속 초속 30m에 이른 계절성 강풍 탓이 가장 크지만 해마다 심해지는 겨울가뭄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화재에 취약한 소나무 등 침엽수가 많은 지역이라는 점도 불을 키웠겠지만 산불진화를 위한 장비와 인력 등에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한 부분도 반드시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모습과 위력으로 갈수록 그 위험성이 커지고 있는 자연재해 대비에 만전을 기하지 않는다면 더 큰 위기를 맞이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접근이 어렵고 확산속도가 빠른 산불의 특성상 헬기를 이용한 진화가 가장 효과적이다. 실제 산불 진화의 80% 가량을 차지하지만 전국적으로 산불진화에 동원될 수 있는 헬기는 자치단체에서 임대해 쓰는 것을 포함해 산림청·소방청 등 160여대이고, 초속 15~20m의 강풍에도 출동할 수 있는 대형이상은 30대를 조금 웃도는 정도다. 더구나 야간에 나설 수 있는 대형 첨단헬기 확보는 국회의 예산타령에 수년째 발목이 잡혀있다고 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대형 산불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길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산불진화의 최일선에서 뛰는 산불재난 특수진화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화작업에 매달리지만 고용불안을 걱정하는 비정규직 신세다. 누구보다도 산불진화의 전문성을 갖췄지만 10개월짜리 단기계약직으로 1년마다 새로 고용되다보니 전문성을 향상시킬 여력도 없고 처우나 지원장비도 턱없이 부족한게 현실이다. 산속에 들어선 택지나 도로변 등의 방화수림 조성도 구체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큰 효과를 본 국가차원의 대형재난 비상출동시스템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야 하는데 재난마저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여의도 상황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이변이 일상이 된 기상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현대문명에 위협이 되면서 우리는 자연재해로 인한 국가재난사태 선포, 특별재난지역 지정이 낯설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2005년 양양 산불이 그랬고, 2017년 청주 물난리가 그랬다. 계절과 지리적 이유도 한몫했지만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날씨는 당혹을 넘어 공포로 작용한다. 기상이변이 인류멸망의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꼽히는 마당에 예측을 불허하는 자연재해가 지금 주는 경고를 제대로 받아들여 대응하지 못한다면 자연재해와 재난이 일상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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