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얼마전 고등학교 동기생 몇몇이 주말을 이용하여 동해안을 다녀왔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동기생들과 이처럼 편하게 여행을 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젊었을 때에는 직장생활에 혼신의 힘을 쏱았다. 앞만 보고 오직 외길을 달려왔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 뒷바라지 하기에 정신이 없다보니 어느새 검은 머리에는 서리가 내렸고 앳되던 얼굴은 주름살과 골이 서너군데 패인 세월의 산 증인이 되었다. 맞다. 세월앞에는 장사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지나간 세월을 뒤돌아보면 그 나름대로 진미가 있었다. 그래도 기회있을 때 마다 승진이라는 쾌감(?)도 맛보고, 관리자로서 경영마인드도 배울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친구들에게도 예외없이 정년퇴직이라는 제2 인생의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다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모두들 바쁘다고들 한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 때문에 바쁜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차안에서 학창시절부터 현재의 삶까지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후 쉼터에서 차에서 내려 둘러보니 바람은 조금 찰지언정 분명 나뭇가지에는 금방이라도 꽃을 터뜨릴 기세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조금있으면 저 산과 들 이름 모를 꽃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 또한 사회를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선사 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불현듯 언젠가 들은 이야기가 뇌리를 스친다. 어느 도공의 이야기다. 어느 날 한 나그네가 도자기 굽는 곳을 찾게 되었다. 도공이 도자기를 열심히 빚고 있었고 여러과정을 거친 후 마침내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어 냈다. 나그네는 환호성과 함께 도공에게 물었다. '이 도자기 정말 예뻐요? 대단하세요, 선생님, 그런데 가격은 얼마쯤 되나요?'라고 물었는데 도공은 아무 말 없이 그 도자기를 사정없이 깨뜨려 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그네는 은근히 화가 나서 '아니, 이 예쁜 도자기를 왜 깨뜨려요?'하며 항의하듯 말하자 듣고 있던 도공은 빙그레 웃으면서 '선생님, 이 작품은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걸작품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많은 도자기를 구웠지만 정말 내 마음에 맞는 최고의 걸작품은 아직 만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도자기를 만들고 또 구워내는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저 들과 산에 필 꽃들도 우리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그 도공도 자신의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데 나에게도 남을 위해 작은 일이지만 얼마든지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평소 잘 아는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어르신들에게 글쓰기를 통해 그분들이 시도 짓고, 수필도 써보고, 발표도 해보고 해서 자신감을 신장시켜드리면 어떠하겠느냐"고 용기를 내어 먼저 제안을 드려보았다. 예상외로 그 분이 매우 좋다며 관심있는 분들을 모셔 볼테니 수고좀 해 달라고 하였다. 나는 쾌히 승낙하고는 "오히려 제가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오늘따라 왠지 마음이 뿌듯해진다.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모처럼의 친구들과 여행은 또하나 나의 삶의 작은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우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동해안 해변을 따라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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