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벚꽃이 번져 지난봄을 다시 물어온다. 꽃잎은 부풀고 부풀어 하늘을 가리고 꽃구름 되어 온 땅을 덮는다. 지난겨울, 혹한과 풍파에 쓸리고 깎여도 꽃눈을 감춘채로 온 몸이 검게 타도록 새 봄을 기다리며 제 스스로를 다독이고 품었을 벚나무가 눈부신 기운을 쏘아 올리며 분홍풍선을 띄웠다.

카프만 부인은 책상 위에 곧 나비가 될 고치를 관찰하고 있었다. 너무도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 마리, 두 마리 그토록 작은 구멍을 통해 결국 빠져나와 공중으로 훨훨 날아올랐다. 때마침 또 나오려고 애쓰는 나비가 애처로워 가위로 그 구멍을 넓게 잘라주었다. 열어준 구멍으로 나비가 쉽게 나왔으나 공중으로 솟아오르며 몇 번 시도 하면서 결국 땅바닥에서만 맴돌다 죽어버렸다. 그는 깨달았다. 작은 구멍에서 고통하며 힘쓰면서 나와야 어깨에 있던 영양분이 날개 끝까지 공급되어 날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글은 카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 내용이다.

아들은 'BRT'라는 락 밴드를 결성하여 곧 있을 두 번째 공연준비로 서울을 오르내리며 빠른 한 달을 보내고 있다. 피곤하고 지칠 만도 한데 합주에 매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화를 꿈꾸며 변태하려 애쓰는 모습이다.

아들이 처음 락 밴드를 한다고 할 때, 말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시작하여 자신에게 맞는 음악 스타일과 톤을 발견하기까지는 대단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고 생산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가시밭길을 자초하는 아들을 끝내 말리지 못했다. 두 달 전 합정역 부근 공연장에서 멤버들과 첫 공연을 하는 아들의 또 다른 모습을 바라보며 생경함과 함께 감동이 밀려왔다. 첫 무대에서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선보이는 공연은 부담감으로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미 무대 경험이 많았던 다른 멤버들은 노래와 춤으로 자유주의적 아나키즘이 물씬 배어 나오는 하드코어 밴드 음악세계를 마음껏 토해냈다. 팬들은 "BRT"를 외치며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첫 공연은 내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온 몸을 덮고 있던 허물을 벗으려 안간힘을 쓰는 멤버들의 모습이 절실하면서도 순수하게 보였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한 길을 걸으며 흔들리지 않고 음악에 희망을 싣고 거친 파도를 타고 나아가는 아들의 도전은 음악의 가치와 존재감이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었다. 가난과 타협하는 아티스트들이 있기에 지금까지도 다양한 음악적 생태계가 유지 되고 있음을 느낀다.

집에는 몇 그루의 동양란이 있다. 첫해에는 꽃이 피어 은은한 향이 집안에 가득 찼다, 그 향을 그리워하며 분갈이를 하고 일조량을 맞추고 양분을 충분히 주었음에도 이듬해부터는 꽃이 피지 않았다. 원인은 저온순화 과정을 보내지 않은 탓이었다. 그제야 식물도 혹한을 견뎌내야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화는 애벌레가 몇 번의 변태(變態)를 거쳐 번데기가 된 뒤 나비가 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 봄, 뜻하지 않은 일로 위기가 찾아와도 역경의 구멍을 통과한다면 준비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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