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장용숙 청주 운동중학교 교장

이나무

눈속에서 피는 노란 복수초 꽃을 시작으로 봄의 전령사 매화꽃, 산수유, 미선나무 꽃에 이어 화사한 벚꽃이 개화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통영을 좋아해서 고향도 아니고 특별한 연고도 없지만 자주 찾는다. 통영이 청주에서 거리상 멀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한려수도와 석양, 그리고 예술인들의 기념관을 가면 그저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올해도 한해가 시작되는 연초에 과학교육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융합과학적 마인드 함양을 위해 통영에 있는 윤이상 기념관과 박경리 선생님의 기념관을 찾았다.

통영 바다의 파도소리를 음악으로 표현하셨던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세계에 대해 해설해 주시는 분이 목이 많이 아파서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도 애정과 열정이 가득 담긴 말씀에 우리는 모두 매료되었었다. 특히 벽에 붙은 글을 읽고 무릎을 탁 치고 싶을 만큼 공감했었다. "작은 들꽃들이 피어있는 가을 들판에 누워봅니다. 들꽃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아주 크게 보입니다. 어떤 것을 아주 작게 혹은 아주 크게 인식하는 것은 그것과 나와의 거리에 달려있습니다. 바람이 불거나 곤충이 찾아오면 꽃은 균형을 잃게 되지만, 다시 잃었던 균형을 되찾게 됩니다" 라는 글에서 결국 모든 것은 나의 인식으로 생겨난 갈등이었음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윤이상 기념관 입구에는 빨간 열매가 무성히 달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일행 중에 누군가가 "이 나무가 먼 나무야?"하고 물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이나무가 바로 먼나무야"라고 했더니 일행들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다시 이나무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나무와 먼나무는 남부지역에서 자라는 수종으로 우리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없지만 제주도, 완도 등 남부지방에서는 조경수로 또는 가로수로 만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이나무와 먼나무의 이름 때문에 사람들은 다시 관심을 갖게 된다.

나도 완도 수목원에서 처음 이나무를 만났었다. 이나무는 암수가 딴 그루로 잎이 큰 갈잎나무로 붉은빛의 잎자루가 한 뼘 정도로 길고, 잎 뒷면은 하얗다

암그루는 늦봄에서부터 초여름에 황록색의 작은 꽃이 피고 늦가을에서 초겨울에 붉은 열매가 달린다. 특별히 새큼하거나 달콤한 맛도 없지만 겨울바람에 다른 열매들이 대부분 떨어졌을 때 까지도 그대로 매달려 있어 산새들에게 먹이를 제공하여 멀리까지 자손을 퍼뜨릴 수 있다. 그러나 추위에 약하고 천적 하늘소 때문에 흔하게 볼 수는 없다. 또한 먼나무도 암수가 다른 나무다. 암나무는 5월부터 작고 붉은빛이 도는 연한 녹색의 꽃이 피고,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붉은 열매를 가득 달고 있다. 때문에 꽃이 별로 없는 계절에 시선을 끌기도하고, 겨울 내내 배고픈 산새들을 유혹하여 종족을 보존하는 생존전략을 갖는다. 그리고 줄기는 10m 정도로 키가 크고, 나무껍질은 진한 녹갈색이며, 가지는 암갈색으로 반질반질한 두꺼운 잎을 가진 늘 푸른 나무다. 제주도 지방에서는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 있어 관광객들에게 "이나무가 먼나무야" 하면서 웃음을 주곤 한다

장용숙 청주 운동중학교 교장

통영시 산양읍의 양지바르고 바다가 멀리 보이는 따뜻한 곳에 박경리 기념관이 있고, 산길을 조금 올라가면 선생님의 묘소가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은 다 아름답습니다. 생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피동적인 것은 물질의 속성이요, 능동적인 것은 생명의 속성입니다." 산길을 오르는 산책로 바위에 새겨진 선생님의 마지막 산문 중에 있는 글속에서 '유래카의 기쁨' 같은 속삭임이 마음에 요동쳤다. 자연의 힘은 대단하고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의 비밀이 바로 능동적인 삶, 그리고 긴 세월 종족을 보존해온 유연성과 적응력이었다고 생각해본다. 오늘 아침까지도 쌀쌀한 기온으로 가시연이 담긴 수조의 물이 얼었다 녹았다 한다. 그리고 지난해에 생산된 씨앗이 물위로 떠오르기도 하고 아래로 가라앉기도 하면서 새싹을 잉태하고 있다. 이번 통영여행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살아있는 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행복한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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