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류시호 시인·수필가

작년에 송광사를 다녀온 후 오랜만에 통도사를 갔다. 사찰 입구를 통과하며 송광사보다 규모가 크고 암자도 많아 국내에서 큰 절임을 느꼈다. 이 사찰은 1천400 여 년 전, 신라 선덕여왕 때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경주의 황룡사가 왕실귀족불교의 중심지였던 것에 반하여 통도사는 산중에 자리 잡은 수행불교(修行佛敎)의 중심도량이었다.

통도사에 모셔진 부처님 사리와 금란가사(金欄袈裟-금실로 수놓은 가사)는 자장스님이 문수보살로부터, 당 나라 태종이 하사한 400함의 대장경과 금란가사를 전해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고려시대 원나라 사신이 고려에 올 적에는 가장 먼저 통도사에 참배하였다. 이 사찰은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법보사찰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있다. 그리고 금강계단을 설치하여 전국의 모든 승려들이 통도사에서 계를 받아 득도하게 함으로써, 승보와 법보 등 불교에서 소중히 여기는 삼보가 이 사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금관가야(金官伽倻)의 도읍지 김해를 갔다. 작년에 대가야가 있는 경북 고령군을 다녀와서 김해를 가보고 싶었다. 마을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다 보면, 금관가야와 대가야 등 6개 가야가 나온다. 금관가야는 1∼6세기 초 낙동강 하류 일대를 차지한 부족국가로 본가야(本伽倻)라고도 한다.

김해시에 있는 김해수로왕릉(金海首露王陵)에 갔다. 금관가야의 시조이자 김해김씨 수로왕의 무덤을 납릉(納陵)이라고 부른다. 수로왕에 대한 이야기는 일엽 스님이 저술한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전하고 있다. 400 여 년 전, 조선 광해군 때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적 저술을 한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을 보면, 능의 구조는 큰 돌방무덤(석실묘)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 당시에 왕이 죽으면 주위에서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을 같이 묻는 순장을 했는데, 한반도에서 순장 풍습의 존재가 증명된 곳은 가야와 신라뿐이다.

고준환 경기대 명예교수의 '고주몽 성제에서 광개토 대제까지' 책을 보면, 불교가 고구려나 백제보다 먼저 2천 년 전 가야에 유입된 것은,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과 오빠 장유화상이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탑(婆娑石塔)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불교문화가 국제결혼을 통해 가야에 들어왔다. 통도사와 김관가야 유적과 유물, 왕릉 그리고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보고 배울 수 있어서 보람찬 날이었다. 전국에 흩어진 고대와 중세시대 선조들의 삶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저력을 알게 되고, 인문학을 통하여 우리 고유문화에 대한 믿음과 힘을 얻었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책을 통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이라고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면서 직접 경험하면 좋은 점도 많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믿음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말이 되며, 말은 행동이 되어 습관이 된다고 했다.' 우리가 여행을 하다보면 귀중한 역사적 유물이나 문화재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다. 작은 유물 1점, 문화재 1점이 글감도 되고 귀중한 지식을 쌓기도 한다. 여러분들도 여행을 하면서 간디의 말처럼 믿음, 생각, 행동, 좋은 습관을 통하여 행복의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다. 행복은 저 멀리가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 우리 마음속에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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