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최시선 수필가

지난 2월 어느 날이었다. 학교는 아직도 방학이라 고요했다. 이따금 광혜원 넓은 뜰에서 덕성산 자락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포근했다. 어르신 한 분이 서류 뭉치를 들고 교장실을 찾아왔다. 그 분은 전에 면장학회 이사장을 맡았던 분이었다.

오시자마자, 서류 뭉치를 꺼내 보이면서 '광혜원 만세운동'이야기를 하셨다. 한참을 듣고 있노라니, 가슴이 메어오고 통한이 치밀어 올랐다. 유족이라는 분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여주기에 자세히 읽어보았다. 제목이 '광혜원 만세운동을 아시나요?'이었다. 세상에, 바로 이곳 광혜원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서울에서 3월 1일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진천 광혜원에는 대한제국 군무학교를 졸업한 '윤병한'이라는 지도자가 계셨는데, 이분은 나무를 심는다는 명목으로 산에 사람들을 모이게 하여 태극기를 대량으로 만들었다. 처음 만세운동을 벌일 때는 삼백여 명이 모였으나, 광혜원 장날인 1919년 4월 3일에는 이천여 명이 손마다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깜짝 놀라 출동한 일본 헌병이 총을 겨누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은 저항했다. 결국 앞장서서 격렬하게 만세운동을 펼치던 몇 분이 총탄에 맞아 즉사했다. 그 중에 한 분이 '박도철'이라는 분이다. 이 분이 제일 선봉에 섰단다. 아들이 피를 흘리며 죽자, 이를 본 어머니가 달려왔다. 아들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내 아들이 무슨 죄를 지어 죽였느냐고 하면서 울분을 토했다. 이내 헌병 주재소로 달려가 돌을 던지며 항의를 하니 어머니에게도 총을 쏘았다. 어머니도 결국 그 자리에서 죽었다. 아들과 어머니가 한 날에 제삿날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 후 일본 헌병들은 박도철 일가를 샅샅이 뒤지고 감시를 하는 탓에 족보를 다 태워 없애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 버렸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 유족들은 조상의 이러한 숭고한 넋을 기리고자 독립유공자 신청을 하려고 했으나 뚜렷한 자료를 찾지 못해 미뤄왔다. 그러던 차에 최근 확실한 근거를 찾고야 말았다. 바로 진천군지에 이 분에 대한 사망 기록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교장실에 오신 이사장님은 형광펜으로 짙게 표시된 부분을 나에게 보여주며 너무도 뿌듯해 하셨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교육해 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약속했다. 당연히 학생들에게 이 자랑스럽고 확실한 사실을 알려주겠노라고.

입학식 때 지역사회 인사와 학부모님이 모인 가운데 힘주어 말했다. 때마침 KBS청주방송 9시 뉴스에서 보도된 방송파일을 그대로 보여주고 설명을 했다. 이 얼마나 생생한 역사 교육인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역사를 바로 알 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꼭 백년이 되는 해이다. 백년의 봄이 찾아왔다. 3·1운동이 그냥 우연히 일어난 걸까. 절대 그렇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저력이 살아 있음을 만천하에 보여 준 일대 사건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구한말 의병 운동이 있고, 동학농민 혁명이 있다. 더 올라가면 임진왜란 때 왜적에 저항했던 승병 운동도 있다.

3·1운동은 민초들의 자발적인 비폭력 평화 시위였다. 여성은 물론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세계 역사에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민족운동이었다. 사전에 발각되지 않은 비밀 결사 운동이었으며, 결국 이것은 상해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은 이웃 나라에게도 영향을 주어 중국의 5·4 운동, 인도의 비폭력 저항운동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3·1절 날, 나는 울고야 말았다. 혼자 우두커니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기념식을 보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뜨거운 진액이 흘렀다. 특히, 윤봉길 의사 종손이 두루마기를 입고 나와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심훈의 옥중편지를 읽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라를 잃어서는 안 되지. 다시는 나라를 빼앗겨서는 안 되지 하는 마음이 솟구쳤기 때문이리라.

광혜원 들판에 봄은 다시 오고, 역사의 그날 4월 3일이 되었다. 아, 백년만의 봄이다. 빼앗겼던 들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지역민들과 함께 목청껏 독립운동을 외쳤다. 의기투합하여 그날의 행사를 재현했다. 윤병한 지도자의 공적비에 헌화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우리 학생들은 3·1절 노래를 합창하고 플래시 몹을 멋지게 했다. 저마다 필사한 독립선언서를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쓰리고도 아린 퍼포먼스도 연출했다. 순간 모두가 숨죽였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4월 3일, 그날을 떠올리며.

 

최시선 수필가 약력

최시선 수필가<br>
최시선 수필가

▶2006년 월간 문예사조 수필 등단
▶CJB 청주방송 제5회 TV백일장 수필 장원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청주문인협회 부회장
▶저서 '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 '학교로 간 붓다', '소똥 줍는 아이들', 수필집 '삶을 일깨우는 풍경소리', '내가 묻고 붓다가 답하다'
▶진천 광혜원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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