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 나희덕

청소부 김씨
길을 쓸다가
간밤 떨어져내린 꽃잎 쓸다가
우두커니 서 있다
빗자루 세워두고, 빗자루처럼,
제 몸에 화르르 꽃물드는 줄도 모르고
불타는 영산홍에 취해서 취해서

그가 쓸어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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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일 시인.
최호일 시인.

봄이 되면, 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 청소를 하고 있던 김씨에게는 물론 빗자루에게도 봄은 온다. 그래서 빗자루조차 꽃물이 드는 것이다. 왜, 안되나? 청소부하고 빗자루는 꽃물이 들면 좀 안 되나? 그러나 "그가 쓸어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어서 봄은 떨어져 내린 꽃잎처럼 참 슬프다. / 최호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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