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와 아내
손목시계와 아내
  • 중부매일
  • 승인 2019.04.17 17: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석교사 이야기] 김창식 충북과학고등학교

손목시계가 필수품이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는 사람 드물다. 스마트폰이 보편화 되고서 삶의 지각변동이 왔다. 검색의 편리성이 충족되니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사이버 세계에서 광범위한 교류가 있을지언정 현실에서는 혼자가 되어 가고 있다. 가족 사이에도 대화가 없어지고 있다.

손목에 꼭 차고 있어야할 시계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인터넷이 우리에게 처음으로 등장하던 즈음이다. 예물로 받은 시계를 잃어버렸으니 아내를 마주 볼 면목이 서지 않았다.

아내는 나와의 결혼 때문에 종교를 포기했다. 교회당에 발을 적신 여자는 불가하다는 어머니의 신조를 알리지 않고 구혼의 망을 끈질기게 씌운 내게 아내는 처음으로 불신을 생각했을 터였다. 어머니의 별난 종교 관념을 전혀 모른 채 아내는 첫 대면에서 결혼 불가라는 폭탄을 맞고 앉은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다행히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고 고분고분 들어주는 인내심을 베풀었다. 아내는 어머니로부터 맞은 폭탄보다 위력이 더한 폭풍으로 나를 추궁했다. 그저 듣기만 하면서 아내가 진이 빠지기만 기다렸다. 모질지 못한 아내는 예상대로 하루도 못 되어 어떡하면 좋으냐며 백기를 들었다. 아내에게 술을 권했다. 아내는 살얼음처럼 여려진 가슴으로 술을 마셨다. 결혼을 미룰 수 없어 아내의 퇴직금으로 사글세방을 얻었다. 처가에 가서 오년 안에 아파트를 장만하겠다고 말했다. 장모는 내말을 믿는 표정이 아니었다.

딸에게 해피아이 옷을 입히고, 영창피아노를 사주고, 딸이 그토록 원하는 MBC 합창단에도 가입시켜주고픈 심정의 버거움이 아내의 생활에 전부로 잠식되니 지갑 속의 빈약한 지폐가 곧 아내의 인생이던 시절이었다.

객지에서 아내가 한 명 정도의 고향친구를 갖고 있다는 것이 참 다행한 일이라고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동창인 그녀가 시댁 식구들이 온다며 전화로 앙탈을 떨었다. 부려먹으려는 속셈이었다. 아내가 핑계 하나 얼른 꾸며내지 못하고 나가보니 그녀가 크레도스를 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에 돌아온 아내가 비닐봉지를 거실 바닥에 던졌다. 아내에게서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아내가 화장지를 북북 뽑아 코를 팽 풀었다. 딸이 바닥에 던져진 봉지를 주워들었다. 봉지를 빼앗아 휴지통에 넣은 아내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쁜 년. 택시 타고 온다는 데 억지로 태워가지고는 유세를 떨어?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숨죽이고 있다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아내의 기척을 듣고 TV를 켰다. 아파트가 있는 남자, 크레도스를 운전하는 아내를 둔 남자가 부러웠다. 이튿날 아내가 휴지통에 넣었던 부침과 반찬을 아침상에 올렸다.

김창식 충북과학고등학교

아침 설거지를 마친 아내가 옷을 사 입어야겠다며 신용카드를 들고 중심가로 나갔다. 아내가 없는 집은 동굴처럼 눅눅했다. 아내가 마음에 드는 옷을 사서 기분이 전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굴뚝같았다. 한편으로 시계를 잃어버린 내가 너무 싫었다.

해가 기울어서 돌아 온 아내를 멀찍이서 바라보았다. 옷을 사러 나갔던 아내의 가방에서 나온 것은 딸의 나비머리핀과 내 손목시계뿐이었다.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인 딸이 결혼해 아들을 낳았고 그날의 손목시계는 고장이 났다. 멈추지 않는 시간의 톱니바퀴에 물려 살고 있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후회하는 것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해 노력하지 않음이 또 후회가 된다. 손목시계의 멈춘 바늘을 보면 어려웠던 그 시절 아내의 눈빛이 생각난다. 내년에 아내는 회갑의 나이가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