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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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부매일
  • 승인 2019.04.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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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강전섭 수필가
 

뜰팡 소나무 잔가지가 심하게 흔들린다. 화창한 봄날에 바람의 기운도 없는데 별일이다. 소나무 속에서 날개를 퍼덕이는 비둘기들의 몸놀림이 격렬하다. 두 마리가 서로 싸우는 듯 보이나 그 상황은 아니다. 상대를 부르는 곰살맞은 소리에 몸짓을 나누는 거룩한 행위이다.

옛집을 찾아든 비둘기 한 쌍의 몸짓이 정겹다. 둥지를 짓느라 바쁘다. 수놈이 나뭇가지를 물어오면 암놈은 보금자리를 엮는다. 흐트러진 곳은 다시 세우고 빈 곳은 채우며 새 안식처를 만드는 중이다. 분홍색이 도는 잿빛 치마를 곱게 두른 새색시의 모습은 곱지만 솜씨는 어설프다. 가까이 다가가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집주인의 마음을 읽고 있는 듯하다. 언어는 불통이지만 주고받는 다정한 눈길과 교감으로 믿음이 생긴 모양이다. 비록 미물이지만 함께하는 삶이 아름답다.

지난 늦가을이었던가. 새끼를 친 비둘기 부부가 갈바람을 타고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가으내 그네들의 사랑과 행복이 강물처럼 흐르던 정든 보금자리가 텅 빈 채로 남아 있다. 매일매일 나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비둘기 가족이다. 사라진 그 자리엔 한동안 사랑의 온기가 식은 채 적막함이 내려앉는다. 치열했던 삶의 흔적만 찬바람에 흩날릴 뿐이다. 해토머리쯤 새들의 안부가 궁금하던 차에 그들이 돌아온 것이다.

그들이 돌아오자 뜨락은 생기를 되찾은 듯하다. 우리 부부만 사는 적막한 공간에 새 식구가 들어와 왁작거린다. 연어가 모천의 물때를 거슬러 본능적으로 회귀하듯, 유년의 추억이 서린 둥지로 돌아온 것은 그들의 귀소 본능일까. 담장 너머 쥐똥나무 숲에는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앙증맞은 둥지와 함지박만 한 말벌집은 여전히 휑하니 비어있다. 머잖아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순이 돋으면 그들도 돌아오리라.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하듯 그들도 본향의 그리움을 품고 있을 것이다.

문득 고향이 그립다. 반시간이면 달려갈 수 있는 고향길이다. 부강에서 십여 리 길을 걷다보면, 동서로 야트막한 산이 삼태기처럼 둘러쳐진 아늑한 마을이 나온다. 지금은 사통팔달의 도로가 놓여있지만, 예전엔 문명의 혜택은 더딘 곳이다. 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온 게 중학교 2학년 때이다. 밤늦게 공부할 때 잠깐 졸다가 등잔불에 눈썹과 머리털을 태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침에 세수할 때마다 콧구멍에서 시커먼 등잔불 그을음이 쏟아져 나오는 때도 허다하다. 돌아보면 웃음이 절로 나는 시절이다.

나는 안타깝게도 찾아갈 고향이 없다. 세종특별자치시로 고향 마을이 편입되고, 토지가 수용되어 사람들은 정든 고향을 떠났다. 떠난 자리엔 4차선 도로가 깔리며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지난겨울에 고향을 찾았을 때 뒷산만 남고 집터를 찾을 길이 없이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본 적이 있다. 언덕에 올라 사방을 돌아보니 만감이 교차하며 고향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나도 어느 순간에 실향민 신세가 된 것이다.

무시로 찾아갈 고향이 있다는 건 행복이다. 고향은 영원한 안식처이기에 향수를 느끼는 것이리라. 실향민이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자신이 이리될 줄 꿈엔들 생각했으랴. 살다 보니 바람결에 스쳐 지나가는 말이나 사연들이 바로 내 이야기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이젠 부모님조차 계시질 않으니 고향이란 단어는 동화 속에 나오는 먼 옛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금강의 물줄기가 휘돌아가는 명당의 길지인 내 고향 부래미가 삼삼하다.

날짐승이 터를 잡는 곳이 명당이란다. 이곳을 찾아낸 비둘기 부부의 혜안이 놀랍고, 안식처인 줄 알고 해마다 고향을 찾는 그네들이 부럽다. 실향의 서러움을 느끼지만 나 또한 좋은 터를 잡아 새로운 삶을 누리는데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 대궐에서 살고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랴. 저 비둘기 부부도 해마다 이 뜨락에 둥지를 틀고, 삶의 희로애락을 일구어 나갈 게다. 머잖아 둥지 안에 새 생명의 합창 소리가 울려 퍼지리라. 지금도 소나무 위에는 산비둘기 부부의 사랑놀이가 뜨겁다.

 

강전섭 수필가 약력

강전섭 수필가
강전섭 수필가

▶ 2015년 수필과 비평 신인상
▶ 우암수필문학회, 충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청주문인협회 회원
▶ 충북수필문학회 부회장
▶ 한국문학세계화추진위원회 충청지부장
▶ 청주문화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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