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4월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찬 계절이라기보다 잔인한 달 4월과 피의 화요일, 그리고 김주열군의 눈에 박힌 최루탄에서 솟아오른 4·19혁명이 먼저 떠오른다. 이는 그해 4월의 그날에 그 대열에서 함께 피를 토하듯 자유와 민주와 정의를 찾기 위해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피를 뿌리며 목숨 바쳐 싸운 것이 지금껏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음이리라. 불귀의 객이 된다한들 어찌 그 날의 그 일을 잊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하는가보다.

그때 우리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비민주적 정치를 자행하고 있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그 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청산하고 자유와 민주 그리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국민적 염원에 학생들이 앞장서 이끌어낸 4·19학생혁명은 주체가 학생이라는데 그 의미가 가히 세계적이다.

본디 혁명은 기존의 불합리한 정치와 사회 체제를 변혁하기 위하여 이제까지 국가 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을 대신하여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 교체의 형식이지만, 그 행동의 주체가 교체된 권력을 차지하지 않기에 혁명(革命, revolution)이라고 한다.

4월 혁명으로 목숨을 잃은 학생은 많았지만 혁명에 참가한 학생들이 탈취한 정권에 참여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나이 어린 학생이라 그랬을 거라고도 하지만 대학생이나 학생들의 행동에 용기를 불어넣어준 교수들 중에서도 누구하나 들어가지 않았다. 4·19학생혁명과 3·1운동이나 광주학생운동이 쿠데타나 폭동과 극명하게 구별되는 기준이다.

4·19 학생혁명을 의거라고 폄하하던 자칭 5.16군사혁명이 군사쿠데타로 전락되면서 본명(四·一九學生革命)을 되찾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혁명을 우리처럼 초중고대학의 미성년이 대부분인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혁명은 그 유례가 전무후무하다. 물론 학생도 시민임에 틀림없지만 혁명의 중심이 학생이라는 게 다른 어떤 시민혁명보다도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절대왕정의 국가권력을 시민에게 넘긴 영국의 명예혁명(1688~1689)과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을 건설한 미국의 독립혁명(1776~1783), 그리고 자유와 평등과 국민주권을 찾아낸 프랑스의 시민혁명(1787~1794)을 보통 세계 3대혁명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우리의 4·19학생혁명을 더하여 세계 4대혁명이라고 한다.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물론 독일의 3월 자유주의혁명(1848)이나 일본의 메이지유신산업혁명(1868)과 러시아의 볼세비키 공산주의혁명(1917)이 있으나 앞의 3대혁명과는 차원이 다르기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우리의 4월 학생혁명은 시종이 순수혁명의 표본이기에 세계4대혁명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아직은 세계3대혁명처럼 전 세계의 합의된 공인은 없지만, 이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이가 없으니 세계4대혁명으로 기록 인정 기억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적어도 학생이 주체가 된 최초의 민주혁명이라는 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일궈낸 우리의 자유·민주·정의가 정치체제나 넘겨주고 받는 어설픈 한국적 민주주의를 떨쳐버리고 이 땅에 우리의 고귀한 4·19학생혁명정신이 정착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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