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박현수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

가장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초록의 생명들은 길과 숲을 물들이고 색색의 꽃들은 봄을 깊숙이 불러드립니다. 숲 속에 숨겨져 있던 물은 겨우내 가두었던 흙을 벗어내고 계곡의 물로 점점 불어갑니다. 물은 자신의 길을 따라 흐르며 생명을 깨우고 키워갑니다. 물이 없다면 생명도 없습니다. 모든 생명을 물을 기대어 살아갑니다.

물길이 막히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물이 죽어가면서 생명도 죽어갔습니다. 금강의 모래는 금빛을 잃었고, 오염물질이 쌓인 검은 뻘은 죽음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나마 다시 숨을 불어넣은 것은 세종보가 열리면서 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은 천천히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지만 놀랄 만큼 빨리 주변의 생명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금강이 막히면서 죽어간 수만 마리의 물고기들도 언제 아픔을 겪었냐는 듯이 다시 모래 물길을 따라 박차 오릅니다. 최근에 가장 기쁜 소식은 흰수마자의 발견이었습니다.

세종보를 열고 모래가 쌓이기 시작한 것은 일 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수많은 새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으로도 좋은 일이었지만 새는 자신의 서식지를 찾아서 이동이 가능합니다. 생명의 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는 물속에서만 서식하는 물고기의 생태가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4대강으로 가장 크게 희생을 당한 것도 물고기였고, 수문을 열고 살아난 강을 다시 알려주는 것도 물고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세종보 일대에 흰수마자 서식이 발견된 것은 금강이 모래강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흰수마자는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고유종이자 멸종위기야생동식물Ⅰ급인 물고기입니다. 입 주변에 흰수염이 길고 흰색이어서 '흰수염을 가진 마자'라는 뜻으로 흰수마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흰수마자는 우리나라에서 한강과 임진강 하류, 금강과 낙동강 중류 및 하류에 드물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흰수마자의 중요성은 바로 모래에 있습니다. 기존에 서식하는 곳들도 모래가 넓게 펼쳐진 모래강으로 특히 내성천과 미호천은 대표적인 모래 하천입니다. 하지만 미호천은 개발로 인해 수질이 오염되었고, 그동안 모래를 준설하는 등의 환경적인 교란에 의해 훼손되었습니다. 내성천 역시 영주댐 건설로 인해 모래강이 점점 육상화가 진행되어 모래에는 풀들이 자라는 심각한 환경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박현수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숲해설가
박현수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숲해설가

흰수마자가 발견된 곳은 세종보 근처로 세종보가 열린 후 수질이 좋아지고 일 년여 만에 고운 모래가 쌓여 흰수마자가 서식할 수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최근 발견된 곳은 금강이기에 원래 서식했던 미호천에는 아직도 흰수마자의 서식이 불투명합니다. 미호천을 대표하는 멸종위기어류는 총 2마리로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된 미호종개와 흰수마자입니다. 두 물고기의 공통점은 모두 모래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모래하천이 사라지는 것은 이렇게 특별한 생명들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면서 이와 연관된 생명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부적절한 훼손이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것인지 우린 4대강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미호천에 돌아오지 않는 미호종개와 흰수마자가 돌아오기 위해서는 4대강 수문을 연 것과 같이 큰 결단이 필요합니다. 미호천의 모래가 가득 쌓이고 금빛으로 변할 때 우린 큰 재산적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가치가 아닌 두고두고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가치를 말입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처럼 우린 큰 가치를 놓치고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거위의 배를 다시 꿰맬 시간입니다. 다양한 생명들을 보전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자손들이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기에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