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류연국 한국교통대 교수

1960년 3월 15일 마산의 젊은이들과 시민은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바로 잡자며 '협잡선거 물리치자'는 구호를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이때 시위에 나섰던 김주열 학생이 경찰이 쏜 최루탄이 눈에 박혀 사망한 시신으로 해안가의 낙시꾼에 의해 발견되자 4월 11일 학생과 시민은 더욱 분노하여 '학살경관 처단'과 '재선거'를 외치며 거리의 시위를 이어갔다.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동원된 깡패들에 의해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민심은 완전히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4월 19일에는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이 경무대 앞까지 진출하자 당시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결국은 국민을 향해 발포하는 지경에 이르며 183명의 사망자와 6천259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정부가 과연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 정부의 모습인가. 우리의 길지 않은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권력을 거머쥔 자들의 탐욕으로 군인을 동원하여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한 역사의 대죄를 범한 정권이 박정희와 전두환의 쿠데타로 이어지는 제3공화국과 제5공화국이다. 4·19혁명의 민주주의 정신이 군화에 짓밟히는 비운을 우리는 겪어야만 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그래도 성숙해가며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의식을 갖게 되었고 지난 촛불혁명에서는 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군의 무력동원을 주장하는 세력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4·19 정신은 부정과 불의에 항거한 정의의 실천적 발로에서 이루어진 시민혁명이다. 시민들은 자유로움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서로 간의 배려로 아름다움이 충만한 사회를 간절히 소망하며 거리로 뛰쳐나가 부정한 정권의 퇴진을 외쳤을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 지도층 특히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하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가슴이 뜨겁다고 했었다. 또한 우리 젊은이들이 그토록 이루고 싶어 했던 나라가 문 대통령이 만들어 가려는 새로운 나라라고 했다. 과연 젊은이들이 지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 답하고 있는가. 그리고 국민통합을 강조했던 대통령이 맞는가.

시장의 서민과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는 초심이 아직도 대통령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지 묻고 샆다. 정부의 건전한 감시자로 국민을 대신하여 눈을 부릅뜰 것을 요구받은 거대 야당은 과거의 정부 여당으로서의 잘못들을 까맣게 잊은 채 마치 지난 정권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떠들어 대는 것을 보면 기가 차다. 반성과 책임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인 양 행동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류연국 한국교통대교수
류연국 한국교통대교수

지금의 정치권을 바라보노라면 성숙한 민주주의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절감한다. 정치권이 좀 더 성숙해 지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금언이 통하는 그런 나라나 시대를 이미 앞서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슴이 벅찼었다. 우리는 정해진 절차와 질서 속에서 법을 준수하며 권력을 회수했고 현 정부로 권력을 이양하게 했다. 훌륭한 국민이 아닌가.

이제는 정치권이 정의로움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정치 지도자는 국민으로 하여금 존경심을 갖게 하는 결정과 품위를 보여야 한다. 필부로 하여금 웃음거리가 되는 정치 지도자여서는 정의로운 나라로 이끄는 지도자도 아니고 정의로운 행동을 존경하는 사회로 만들 수도 없다.

부정한 정권에 맞섰던 4·19혁명의 정의로운 뜻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우리의 선배들이 이루고자 했던 정의로운 세상을 이루는 데 정치권이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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