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규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관포지교 고사의 주인공인 관중이 썼다고 전해지는 '관자'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나라를 버티는 기둥은 네 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부러지면 나라가 기운다. 두 개가 부러지면 위태롭다. 세 개가 부러지면 쓰러진다. 네 개가 다 부러지면 나라는 사라지고 만다. 기울어진 것은 바로잡을 수 있고, 위태로운 것은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쓰러진 것은 일으켜세울 수 있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되돌릴 수 없다.

그 네 개의 기둥을 말하자면 첫째의 것이 예(禮)요, 둘째 것이 정의(義)요, 셋째 것이 검소함(廉-염)이요, 넷째 것이 부끄러움(恥-치)이다."

恥(부끄러워할 치)는 수치스럽게 여기다는 뜻으로, 수치는 마음(心)으로부터 느끼며 수치를 당하면 귀(耳)가 붉어진다는 의미를 그렸는데, 고대 중국에서는 수치심이 생기면 귀뿌리가 붉어진다고 하며 귀를 가리키는 손짓은 수치스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여 귀는 수치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논어' 자로편에 자공이 묻고 공자가 답하는 내용이 있다.

자공이 "어찌하면 선비라 할 수 있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가 "행기유치(行己有恥), 행동함에 부끄러워할 줄 알고 염치가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요즘 정치인들은 어떻습니까?"하고 자공이 또 묻자 "아이구, 좁쌀 같은 인간들을 내 평해서 뭐 하겠느냐?"고 했다.

공자는 지식인의 제1조건을 '내 행동에 부끄러움을 아는 것'으로, 정치는 '정자정야(政者正也), 즉 정당성이다.'라고 설명했다.

예나 지금이나 학자 출신, 교수 출신 관료들의 공통점은 이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나 보다.

20세기 미국의 저명한 인류학자요, 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 문화를 날카롭게 파헤친 '국화와 칼'의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 교수는 "서양은 '죄'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반면, 동양은 '수치(恥)'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수치를 아는 사람은 작게는 자기 가정에, 나아가서는 자기 마을과 자기 나라에 명예를 안겨준다."고 했고, 윤동주도 그의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잎세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고 절절히 노래했다.

열대야로 밤잠을 설친 여름 아침에 우리를 깨우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최대 120데시벨까지 올라간다. 제트엔진 소리가 130데시벨이니까 그 시끄러움이 가히 짐작 갈 것이다.

매미는 짧게는 7년 길게는 17년을 기다려 탈피하여 허물을 벗고 비로소 성충이 되나 막상 생존기간은 대략 한달 정도로 아주 짧다. 이러한 매미를 보고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은 '한선부(寒蟬簿, 늦가을의 매미를 노래하다)'를 지어 매미의 오덕(五德) 즉 문덕, 청덕, 염덕, 검덕, 신덕을 읊었다.

'매미의 머리위에 갓끈 관(冠)이 있으니 문(文)을 높이는 덕이 있으며, 바람을 마시고 이슬만 먹고 사니 깨끗한 청(淸)의 덕이 있다. 사람 먹는 곡식을 먹지 않으니 염치(廉)의 덕이 있고, 굳이 집을 짓지 않고 나무 그늘에서 살고 있으니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검소(儉)한 덕이 있으며, 어김없이 계절에 맞춰 허물을 벋고 울며 절도를 지키니 신실함(信)의 덕이 있다.'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조선시대 임금이 쓰던 익선관(翼蟬冠)에는 매미날개 모양의 소각 2개가 윗쪽을 향해 달려있고 관리들의 관모에는 매미날개가 양옆으로 뻗어있었는데, 이는 매미의 다섯가지 덕목을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라 한다.

예로부터 매미를 지덕지충(至德之蟲, 지극한 덕을 갖춘 벌레)이라 일컫지 않았던가.

"땅속의 매미야, 창피한 부탁이지만 한 두어 달 일찍 나오면 안 되겠냐?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저 염치없고 몽매한 자들이 정신을 번쩍 차리도록 큰 소리로 울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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