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만화 '카페 보문을 부탁해요'는 작가 심우도의 작품으로 따뜻한 일상이 잔잔하게 흐르는 이야기다.

소소한 일상을 조급해하지 않고 흐르는 대로 주어진 시간에 초대받아 함께하는 기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독자 스스로 걸어 들어가 따스한 위안을 받는 책의 내용은 어찌 보면 무료한 것 같았지만 그 안에서 지친 마음이 어루만져졌다.

책을 읽다 보니 얼마 전에 함께 했던 멋진 노부부와의 대화가 향긋한 커피 향처럼 생각났다.

필자가 다니는 성당에는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되는 노부부가 있다. 서로 존중하며 사랑하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닮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우리 부부는 세례명이 나는 '라파엘' 집사람은 '분다'여서 한마디로 '나팔 분다'라고 어디 가서는 소개를 하지요"

밝은 기운과 긍정의 힘 속에 유머가 있는 남편분의 말은 주위 사람들을 웃음으로 이끌며 즐겁게 해 준다.

기분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서 참 좋다. 그날도 부부 동반으로 웃음꽃 만발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직장 생활만 하다 나이를 먹은 사람들의 최대 고민은 백세 시대에 비해 이른 퇴직이다.

백세 혹은 백이십 세까지도 가능하다는 시대라기에 이른 퇴직은 그래서 더 부담인 것이다.

1997년 IMF가 터지면서 기업이 연쇄적으로 도산하기도 하고 많은 회사들이 부도 및 경영위기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대량 해고와 경기 악화로 온 국민이 어려움을 겪었다. 라파엘 부부의 삶도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명예퇴직의 위기에 서 있었고, 동료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면서 살아남으려 할 때 '구차하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34년간 몸담았던 직장을 나왔다고 한다.

아직은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직장을 잃었다는 것이 불안하기는 하였지만 퇴직 후 무언가 할 일이 있어야 한다는 대비책은 마련되어 있었다. 아내인 '분다' 자매가 '테이크 아웃 커피숍'을 개업하여 장사를 하고 있었기에 조금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커피숍이 대학교 근처라서 개학후 서서히 매출이 늘어갔다. 신선한 재료로 열심히 하자 식사시간까지 놓쳐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고, 몇 년 후 상가도 매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남들은 잘못된 투자로 퇴직금을 날리기도 한다는데 돈 쓸 시간도 없이 문전성시를 이뤄 감사할 뿐이었다는 부부.

서울에서 그렇게 13년을 해온 커피 장사를 접은 것은 손주들을 돌보러 이곳 충주로 내려오게 되면서부터다. 가게를 다른 사람의 손에 넘기게 되었을 때 장사가 잘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권리금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모두가 어려웠던 그때를 회상하며 본인은 권리금을 주고 들어온 가게를 권리금 없이 넘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 주인도 가게를 그만 둘 때는 권리금을 받지 않겠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남겼다고 한다. 비싼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던 사람들이 장사가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 보증금까지 손해를 보는 모습을 옆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그 가게 세입자는 권리금이 없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부부의 훈훈한 이야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 더욱 감동이었다.

어렵겠지만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는 따뜻한 이웃이 곁에 있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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