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일 칼럼] 논설실장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하루에도 몇곳씩 이 병원, 저 의원을 다니며 과잉진료를 받는 소위 '의료쇼핑'은 요즘도 여전하다. 그런데 주로 노인성 질환을 다루는 병·의원에 몰렸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진료과목의 구애가 없어진 듯 하다. 자식들이 못하는 효도를 병·의원과 그곳에 근무하는 의료진들이 대신 해준다는 우스개 소리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헌데 병·의원 대기실을 가득 채운 어르신들이 앞으로는 조금 줄어들 듯 싶다. 정부에서 얼마전 국민건강보험 노인의료비 적용나이를 올리겠다고 밝힌 것이다.

의료비 절감으로 어르신들의 동네병원 이용에 큰 도움을 주는 이 제도의 적용나이를 현 65세에서 70세로 올리겠다는 까닭은 재정부담 때문이다. 지난해에만 여기에 4천700억원이 지출됐다고 한다.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로 지난 2017년 우리나라 노인인구가 14%를 넘어섰으며 오는 2060년엔 전체의 41%에 이른다고 한다. 한마디로 의료비 부담이 눈덩이가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예전과 비교가 안될 정도의 건강상태, 젊음을 요구하는 세태변화 등으로 노인 기준연령 조정이 필요한 때가 되긴 했다.

하지만 이는 각종 경로우대나 매년 이뤄지는 인풀루엔자 백신접종 등 노인복지 시혜에 직격탄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지금도 심각한 노인빈곤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6%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며 빈곤층 어르신이 약 180만명에 이른다. 복지제공 기준 연령이 올라가면 혜택의 빈틈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보험료 납부의 형평성과 막대한 관리비용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건보가 시행·유지되는 것은 의료복지 사각지대 때문인데 대책이 마련돼도 이와 엇박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노인의료비 부담 감축도 포함됐지만 정부가 건보 재정부담 개선방안을 마련한 바탕에는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의료복지 확대가 있다. 지난해부터 건보적용 대상이 크게 확대된 것인데 바람직하지만 비용부담이란 짐은 어쩔 수 없다. 이미 예상됐지만 지난해 건보 재정이 7년만에 1천800억원 가량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는 3조원 가량이 된다고 한다. 더 나아가 수년내 재정고갈 위기가 예고되면서 수입·지출 구조를 손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건보 재정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책임져야 할 몫을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최동일 부국장겸 음성·괴산주재
최동일 논설실장

이에 정부에서 법을 고쳐 건보재정에 안정적인 국고지원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험료 납부인구가 급격히 줄고, 노인의료비가 계속 증가하는 등 재정 건전성이 위협받는 마당에 지출확대는 신중했어야 한다. 다른 연·기금 운용상황을 보면 괜한 걱정이 아니다. 이미 25년전 적자로 돌아선 공무원연금에 쏟아부어야 할 나랏돈이 전체 국가채무의 절반이 넘는 940조에 이르렀지만 대책은 없고, 점차 바닥이 드러나는 국민연금 개편을 사회적 대화기구에 떠맡긴 채 뒷짐만 지는 등 어디 하나 믿을 구석이 없다. 게다가 잠깐의 실수도 돌이킬 수 없는 돈 문제인데 말이다.

40여년째 계속되는 대통령 단임제의 최대 단점은 장기적인 정책, 시간이 필요한 사업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곧바로 성과가 나오고, 당장 박수를 받는 것만 등장한다. 공무원 연금만 제대로 정리돼도 건보 적자 걱정을 안할 수 있지만 발등을 넘어 다리로 번진 불 조차 외면하는 게 현실이다. '왕관을 쓰려는 자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의 주인도 달콤한 권력에 취해, 쓰디 쓴 책무를 잊어서는 안된다. 반환점을 눈앞에 뒀지만 개혁과 혁신을 내건 정부니까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라면 과감하게 짊어지는, 내 임기내에만 피하면 된다며 '폭탄을 돌렸던' 이전 정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면 너무 과한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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