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득렬 교수의 고사성어 - 東山再起(동산재기)
배득렬 교수의 고사성어 - 東山再起(동산재기)
  • 중부매일
  • 승인 2019.04.2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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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다

20여 년 전 시간강사 시절에 같은 대학에서 같이 강사를 했던 이모 박사와 연락이 돼서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지내온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그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별세로 대학 강사생활을 그만두고 지금은 아버님의 사업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꽤나 큰 규모로 사업을 키웠고, 늦게 결혼해서 아이가 이제 대학 3학년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다가 내가 상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어떻게 지내냐고 나의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그저 이전처럼 책 쓰고, 글 쓰고, 학생들 가르치며 산다는 말밖에 별로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즐거운 대화를 마무리하고 헤어질 무렵. 그가 갑자기 돈이 든 봉투를 하나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몰라 조금은 당황했다. 하나는 상처했을 때 오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예전에 내게 빌려간 돈을 합친 것이라 이 박사는 말했다. 나는 이미 지난 일이고, 뭐라고 우리가 돈을 주고받겠냐며 거절했다. 솔직히 나는 당시에 돈을 빌려준 사실도 모르고, 얼마를 빌려줬는지도 기억에 없었다. 이미 지난 일이고, 기억도 없으니 오늘 저녁값을 치르는 것으로 대신하자고 제의했다.

이 박사의 말에 의하면 당시 내가 빌려준 돈은 20만원이었단다. 그 20만원은 급하게 필요한 아버지 병원비로 쓰였고, 이후 집까지 팔아 아버지 병간을 했으나, 그해 아버님은 세상을 떠나셨고, 물려받은 사업은 빚더미 그 자체였단다. 허나 지금은 사업에 성공해서 큰 재산을 이루었고, 그간 자신이 신세졌던 사람들에게 충분히 보은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단다. 그는 내게 봉투를 억지로 쥐어주며 밥값까지 계산하고는 다시 만날 날을 잡은뒤 총총히 자리를 떠났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박사학위를 받은 자신의 전공까지 포기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밑바닥부터 출발해 지금까지 힘겹게 달려온 역정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 박사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晉書(진서)』 「謝安傳 (사안전)」의 고사가 떠올랐다.

배득렬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배득렬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東晋(동진)의 謝安(사안)은 젊어서 관직에 나갔다가 관직을 버리고 會稽(회계)의 東山(동산)에 은거하면서 종일 산수를 노닐며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리며 지냈다. 朝廷(조정)에서 여러차례 東山(동산)에서 나올 것을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다. 40세가 되어서 결국 謝安은 부름에 응하여 조정으로 들어가 다시 관직생활을 시작해 宰相(재상)까지 역임했다. 그는 역사상 8만의 군대로 80만 秦軍(진군)에 대항했던 것으로 유명한 淝水之戰(비수지전)의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謝安의 '東山再起'는 자신의 노력보다는 정치적 상황이 만든 결과지만, 이 박사의 '東山再起'는 철저하게 자신의 노력과 분투로 이뤄낸 것이다. 실패에 머물지 않는, 어려움에 좌절하지 않는 용기! 어쩌면 이러한 용기는 우리 삶의 방향과 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원동력이 아닐까.

이 박사의 모습이 얼마 전 미국의 대표적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처럼 느껴졌다. 승리의 겉만 바라보면 화려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절망과 고통으로 점철된 역경의 과정이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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