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2018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책이 있다.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다. 이 책은 10년 넘게 우울장애의 일종인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를 겪은 작가가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내용을 엮어 놓은 에세이다.

근래의 에세이에 대한 호불호가 나눠지기는 하지만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또 독자들에게 우울증에 대한 이해를 높여줬다고도 회자된다. 그런데 내가 더 주목하고 싶은 점은 책의 출판과정이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기존의 출판과정은 작가의 집필에 출판사의 기획이 더해져 원고가 작성되면 디자인 편집이나 교정과정을 거쳐 인쇄를 한다. 그리고 판매 마케팅과 더불어 독자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일반적인 출판의 과정이다.

그런데 백세희 작가는 처음에 비슷한 증상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웹사이트에 병원에서의 상담 기록을 정리해서 올려두었다. 이후에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200권 정도의 책을 인쇄할 생각을 한다. 크라우드 펀딩은 일반적인 인쇄와는 다르게 자신의 책을 읽을 독자에게 미리 책값을 후원받고, 목표치에 도달하면 책을 출판하는 형태다. 그런데 결과는 많은 예비독자의 기대 속에 1천200여명이나 참여했고, 2천만원이 모였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기존의 출판사를 통해서 출간하지 않은 독립출판물이었다는 점이다. 독립출판은 기존의 시스템을 벗어나 소규모 공동체 또는 개인이 스스로 제작하고 출판하는 것을 말한다. 기존의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나, 새로운 영역, 소수의 의견도 담아낼 수 있는 출판형태다.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작가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이후에 입소문이 나면서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동네서점을 통해 책이 팔렸고, 출판사를 통해 개정판으로 출간되면서 인터넷 서점, 대형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대 창작자의 새로운 기획과 시도가 새로운 출판시장에 훈풍을 불어넣었다.

해가 바뀔수록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는데, 창작자는 기존보다는 진입장벽이 높지 않고, 다양성과 희소성, 개성과 주관이 반영된 독특한 분위기로 출판계에 새로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독립출판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제주도에서는 벚꽃이 한참 만발하던 4월 초, 제주 북페어를 열었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전국 독립서점, 독립출판사, 콘텐츠 제작자 등 200팀이 참가한 규모있는 행사였다. 작가나 창작자가 직접 자신이 쓴 책, 창작물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소통하는데 열정적이었다는 점이 신선했다. 문화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작은 희망을 발견했다. 책 출판의 신세계에서 창작자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층을 형성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책 출판의 신세계에서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주인공은 누구라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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