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향토사학자

올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제474주년이 되는 아주 뜻 깊은 날이다.

문무를 겸했던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인종 1년인 1545년 4월 28일(음력 3월 8일) 한성부 건천동에서 이정(李貞)과 초계 변씨(草溪卞氏)와의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에 아산의 외가로 이사와 31세 때인 1576년(선조 9년) 2월에 야식년시 무과에 병과로 급제할 때까지 아산에서 살았다. 그래서 아산에는 이순신 장군 관련 유적이 많다. 이에 아산시는 아산문화재단과 함께 올해도 이순신 장군의 애국애족과 충효 정신을 기리기 위한 제58회 아산성웅이순신축제를 지난 24~28일까지 온양온천역 광장 등에서 개최했다.

이와는 별도로 순천향대학교 부설 이순신연구소가 2018년 말 현재 이순신 장군을 종합적으로 조사 연구한 학술지인 '이순신연구논총'을 발간해 이순신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1집에서 30집까지 논총에 발표된 수많은 학술논문 중 관심과 흥미를 가장 많이 끄는 것은 한국해양전략연구소 김주식 선임연구위원이 30집에 발표한 '이순신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이다.

김주식은 이순신은 문관과 무관에게 필요한 심성, 자질, 능력은 물론 과학기술자의 능력까지 갖고 전쟁과 역사까지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을 줬기 때문에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실제로 이순신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군신(軍神) 또는 전신(戰神)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인류의 사표나 지도자, 동양사나 세계사의 최고 위인, 한국의 구세주나 영웅, 세계사의 영웅들과 비교할 수 있는 걸출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성웅 이순신 장군은 1592년에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치열한 고뇌와 노력으로 돌파해 역사상 유례가 없는 23전 23승의 놀랄만한 전과를 올렸다. 특히 1592년 10월 25일 진도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랑해전에서는 13척의 배로 130여 척의 왜군에 맞서 대승을 거두며 조선의 위기를 극복해 불세출의 구국의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다.

영국의 일본전문 역사학자인 '스티븐 턴불(Stephen Turnbul)'은 이순신 장군을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했다. '이순신 장군은 한국의 영웅이자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해군지휘관 중 한 명이다. 이순신의 승리들은 일본군의 패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판명됐다.'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시인·문학평론가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시인·문학평론가

1905년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명제독 도고헤이하치로도 이순신 장군을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했다. "영국의 넬슨제독은 군신(軍神)이 될 수 없다. 해군 역사에서 군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순신 장군 한 사람 뿐이다.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나는 일개 부사관도 못 된다."

'이순신각서(李舜臣覺書)'를 저술한 후지이 노부오도 "나를 영국의 넬슨 제독에게 비기는 것은 가하나 조선의 명장 이순신 장군에게 비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라며 높이 평가했다.

후손들이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본받아야 할 것으로는 충효와 애민 정신, 뛰어난 리더십과 전략전술, 타고난 문장력과 창의력, 불굴의 투지와 인내력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창의력을 발휘해 학익진(鶴翼陣)과 거북선을 개발했고, 전란 속에서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난중일기(亂中日記)'를 남겼으며, 모함으로 옥고를 치르고서도 백의종군하며 군인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대한민국 국민들의 중요한 타자(significant others)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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