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4월 마지막 한 주간(週間)을 뜻하지 않은 사고로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지난 주 화요일 아침 집 주위 산책도중 개에게 왼쪽 팔목을 물렸던 겁니다. 운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감사한 한 주간입니다.

우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고교 동기 오 모 군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집 뒷산을 한 바퀴 돌아내려오는데 누가 "유 변호사!" 하고 불렀습니다. 누군가 하고 다가갔더니,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한 그였습니다. 반갑다고 인사하려는 순간, 그가 끌고 오던 커다란 진돗개가 달려들어 제 손목을 물었습니다. 한참 승강이 끝에 개의 입에서 손목을 빼는데 겨우 성공했습니다. 마침 주변에 있던 동네 분들의 도움으로 지혈을 하면서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습니다. 친구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이사 온 지 3년인데도 모르고 산 제가 미안했습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하나님 뜻이니, 바로 옆에 있는 교회에 나오라고 권면해서 승낙을 받았습니다. 사고를 당했으나, 친구와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둘째는 부부간의 애정이 깊어진 것입니다. 제 연락을 받고 놀라 달려온 아내가 병원에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 했고, 거동이 불편한 저를 돕느라 쉴 틈이 없었습니다. 네 시간 응급실에서 대기하다가 두 시간 반에 걸쳐 전신마취 상태에서 수술을 받는 동안 기도로써 도왔고, 목욕이며 환복이며, 내방객 응대 등 모든 일을 도맡아 해서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근래 서로 대화도 별로 없이 지내왔는데, 어려운 일을 당해 24 시간을 붙어서 사소한 것까지 얘기하며 지내게 되니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집니다. 친구들과의 모든 약속을 취소한 것도 미안한데, 집에 가서 자라는 권유도 마다하고 병실에게 같이 지내니, 마음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아내와 더 많은 시간 함께 하면서, 그 마음을 먼저 알아보고 챙기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망외(望外)의 휴가를 얻은 것입니다. 전 주(週)까지만 해도 점심·저녁 약속과 재판이 많았지만, 이번 주는 개인 약속을 잡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공식행사 몇 군데, 재판, 강연, 위원회 등이 있었지만, 사정을 알려 연기하거나 취소할 수 있었습니다. 면담은 동료들이 저 대신 상담하고 도와드렸습니다. 가벼운 사고로 오히려 쉴 기회를 받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생사의 기로를 헤매는 분들, 고통스러워 울부짖는 이들도 많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으니 고맙습니다. 혹 급소를 물렸더라면 생명이 위험했을 것이고, 다리를 물렸더라면 걷지 못해 더욱 고통스러웠을 텐데, 손목을 물린 게 다행입니다. 지금껏 크게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살아온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닫고, 읽다 말았던 책 몇 권도 다 읽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가장 감사한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11년 전 스키장에서 넘어져 뇌진탕으로 병원에 실려 간 이래 두 번째 사고로 입원했습니다만, 수술 전 몇 시간 동안, 살아온 지난 60여 년의 삶을 반추하게 되었습니다. 기우(杞憂)이긴 하지만, 만의 하나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과 함께, 과연 제대로 살아 왔나 자문(自問)하게 된 것입니다. 이미 변호사로서 전성기를 지난 자임에도 아직 할 일이 있다고 자부하면서 열심히 섬기려 하지만, 과연 제대로 살아왔는가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신세진 분들이나, 당연히 돌봐야 하는 이들을 외면하고 살아온 날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제대로 못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세밀하게 주위를 돌아보아 도리를 다하고, 겸손과 즐거움으로 다른 분들을 도우면서, 매일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신실하게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월의 마지막 주간은 이렇게 감사의 한 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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