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고을 마당
옛 고을 마당
  • 중부매일
  • 승인 2019.04.2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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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봄바람은 기생 철이다'는 말은 바람이 옷깃을 헤치고 풀 속으로 파고든다는 말로 여심을 뒤흔드는 봄바람과 햇볕은 싱숭생숭한 마음을 갖게 하여 어디든 떠나게 한다.

봄의 여인들이 노란, 하얀 웃음꽃을 입고 남쪽으로 떠났다. 안동의 낙동강이 가까워지자 차창으로 들어온 봄 햇살로 얼굴마다 발그레하게 꽃물이 든다. 정오에 도착한 하회마을은 가깝게 느껴지는 어제의 모습이다. 이곳은 풍산 류씨의 집성촌으로 코발트 하늘이 고택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만들어 냈다. 친정집에 온 듯 안온하게 품어주는 단정한 고택들은 마루 끝에 앉아 온종일 동구 밖만 내다보아도 지루하지 않을 것만 같다.

짭쪼롬한 안동 고등어구이로 점심식사를 마치자 때마침, 별신굿 탈놀이가 시작되었다. 9종류의 하회탈은 별신굿놀이에서 빠질 수 없는 도구로 무언의 몸짓언어로 예능보유자들이 마당별로 전개되었다. 무동마당을 시작으로 주지, 백정, 할미, 파계승, 양반, 선비, 혼례, 신방마당 등 여덟 마당으로 구성되었다. 주지는 사자를 뜻하는데 액풀이 마당이라 할 수 있다. 파계승마당은 부네(과부)가 춤을 추다가 살짝 앉아서 소피를 보는 모습을 보고 흥분한 중이 부네를 업고 도망가는 마당으로 무언의 중심으로 부분적 유인화로 갈등과 내재를 표현하였다. 마당마다 사회를 풍자하고 해학적으로 양반을 비난함으로써 서민들의 가슴을 뻥 뚫어주는 놀이였다.

그 중 이매탈은 턱 부분이 없다. 미완성된 까닭은 처음으로 허씨들이 이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고 살 때 원인모를 우환이 계속되자 어느 날 허씨 도령이 꿈에 신의 계시를 받는다. 그가 외딴 집에 들어가 탈을 제작 하던 중에 그 누구도 들여다보아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무시하고 그를 사모하는 처녀가 그 광경을 엿보는 바람에 마지막 이매탈을 완성하지 못한 채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유래가 있다. 처녀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그만 자결을 하게 된다. 마을사람들은 처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산중턱에 서낭당을 짓고 성황신으로 받들어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동제사를 올리게 된 것이 오늘날 까지 이어오고 있단다. 이 놀이는 서민들의 놀이이자 문벌인 풍산 류씨와 각성바지들과의 타협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탈마다 눈이 깊고 코가 높은 사실적인 모습과 좌우가 서로 대칭되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하나같이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화가 나도, 슬퍼도, 싫어도, 아파도, 미워도 세상사 스무고개 길에 애환도 고달픔도 탈속에 넣어두고 몸짓만이라도 사뿐사뿐 춤사위로 살아간다면 덜 힘들지 않겠냐는 지혜가 담겨있는 듯하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공연을 관람하고 남도의 보드라운 봄바람을 맞으며 마을을 둘러보았다. 솟을 대문 안 세상은 신비롭다. 명문 고택과 아우르는 초가집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고관대작보다 정겹게 느껴지는 초가집건넛방에서는 지금도 달그락 찰칵, 짜그락 딸칵! 베틀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어느 덧 마을을 돌아 나와 부용대를 끼고 천변을 걸었다. 멀리 보이는 옥연정사는 마치 옥같이 맑고 맑아서 지어진 이름으로 서애 류성룡선생이 임진왜란의 회고록인 '징비록'을 저술했던 곳이다.

600년의 긴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는 절벽, 하늘과 땅은 그대로인데 변해가는 것은 순리에 역행하려는 이시대가 아닐까한다.

안동의 숨결을 찾아 동구 밖을 나오자 저녁노을이 자박자박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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