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김순애 부부의 결혼식 사진. 독립기념관
김규식·김순애 부부의 결혼식 사진. / 독립기념관

[중부매일 유창림 기자]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김규식(1881년 1월 29일~1950년 12월 10일), 김순애(1889년 5월 12일~1976년 5월 17일) 부부를 2019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5월 한 달간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

특별전에는 김규식과 김순애의 사진 등 11점이 전시된다.

김규식은 1913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민족교육을 펼치며 민족의식과 독립의지를 키워나갔고,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하며 독립운동 세력 통합을 통한 임시정부 수립을 제의했다.

외국어에 능통했던 김규식은 1919년 초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됐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후에는 외무총장 자격으로 일제 침략과 식민지 통치의 실상,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세계에 알렸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임시정부의 부주석이었던 김규식은 김구 등과 함께 귀국해 남북 단독정부 수립을 막기 위해 노력했으나 1950년 6·25 전쟁 중에 납북돼 그해 12월 10일, 평북 만포진 부근에서 서거했다.

김순애는 오빠인 김필순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해 1919년 1월 김필순과 막역했던 김규식과 결혼한 후 독립운동 참여와 지원을 목적으로 상하이에서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국내외 애국부인회와 긴밀하게 연계하며 활동했다. 대한애국부인회는 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와 함께 임시정부로의 독립운동 자금 전달, 태극기 제작과 보급 활동 등을 통해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전파했다.

1945년 조국 광복을 맞이한 이후, 김규식과 함께 귀국해 여성교육에 공헌했던 김순애는 1976년 5월 17일 영면했다.

정부는 민족의 독립과 통합을 위해 헌신한 부부의 공적을 기려 1977년 김순애에게 독립장을, 1989년 김규식에게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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