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과도한 채무로 고통받는 채무자들에게 다시 한 번 경제적 자립의 기회를 주고자 우리나라에서는 채무자 파산·면책제도를 두고 있다. 파산 및 면책결정은 법원에서 하는데, 판사가 직접 파산신청자들을 조사하여 파산·면책을 위한 조건이 충족되었는지 모두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법원은 변호사들을 파산관재인으로 선임하여 그들이 조사한 내용을 기재한 관재인 의견을 참조하여 파산·면책에 대한 결정을 한다.

필자는 현재 개인과 법인 파산관재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되기 전 수년간은 법인 파산관재인으로만 선임되어 충청북도 소재 도산기업의 정리를 해왔다. 필자가 기업법무를 오랫동안 하다 변호사로 개업하였기 때문에 기업에서 사용하는 회계언어와 법인 특유의 생리에 익숙하여 법인 파산관재인 업무는 매우 수월하게 진행할 수가 있었다.

수년간 몇 건의 굵직굵직한 법인 파산관재업무를 성공적으로 종결시키고 파산업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법원으로부터 개인 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될 수 있다. 채무액의 단위가 개인 파산관재업무에 비해 적개는 수백 배 많게는 수만 배에 이르는 법인 파산관재업무를 매끄럽게 진행해 왔기에 채무액이 그다지 크지 않은 개인 파산관재업무는 좀 더 수월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필자도 법인 파산관재인으로만 활동하던 시기에는 왜 큰 규모의 법인 파산관재업무는 위임을 하면서 소규모 개인 파산관재업무를 위임하지 않는지 의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개인 파산관재사건을 배당받고 관재업무를 시작하자마자 왜 법인 파산관재업무를 오래도록 한 이후에야 비로소 개인 파산관재업무를 위임하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개인 파산관재사건은 법원으로부터 한 달에 평균적으로 20건에서 30건 가량 배당된다. 본디 개인파산·면책제도는 채무자의 빠른 사회복귀를 추구하여야 하기 때문에 사건의 회전도 법인파산의 경우에 비해 매우 빠르다. 간접적으로 당사자를 만나는 법인파산에 비해 직접적으로 채무자와의 대면상담을 통해 사건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결국 개인 파산관재사건이 배당되면 배당된 수에 상응하는 수만큼의 불운한 인생과 직접적인 관계가 설정된다.

개인 파산관재업무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서 발생한 채무를 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관재인의 감정소모는 매우 크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개인 파산자 대부분의 파산원인은 사회구조에서 비롯된다. 장기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자영업자, 사회 안전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병을 얻어 직업을 잃고 거액의 병원비를 지불하는 흔해빠진 경우에도 건실한 중산층은 매우 짧은 기간에 경제적 파탄에 빠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파산신청자는 마치 죄인이 된 듯 파산관재인에게 선처를 호소한다. 과연 그들의 실패가 선처를 호소할 만한 죄일까?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일각에서는 한 번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구조가 국가 발전에 저해된다고 하며 채무자의 파산·면책에 호의적이지만, 반면 돈을 빌린 사람이 파산 신청하여 새출발을 도모하는 것 자체를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오히려 그런 시각이 주류로 보인다. 언론에서 파산 신청한 연예인을 범죄자 취급하고, 파산의 위기에서 간신히 탈출한 극소수의 연예인을 영웅시하는 것도 그런 시각에 힘을 실어준다.

가끔 감당하기 어려운 채무 때문에 목숨을 끊는 채무자도 있다. 한 번의 실패가 용인되지 않는 사회분위기도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사회구조가 안긴 빚 때문에 무너져 가는 힘없는 개인에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따스한 빛을 비춰줘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개인채무자 파산·면책 제도의 존재의의가 아닌가 한다. 빚이 빛이 될 수 있는 사회분위기의 극적인 변화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