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부매일
  • 승인 2019.05.0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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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이영희 수필가

움찔했다.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여놓으려다가 사람이 아닌 도사견과 마주친 것이다. 머뭇머뭇하니 개 주인은 괜찮다며 끈을 바짝 잡아당긴다. 다시 보니 반려견의 슬픈 눈이 보인다. 이제껏 자유를 구속당하다 바깥 구경시켜주려는 주인에게 심통을 부리는 것인지, 투견 대회라도 나가고픈 전사의 맹렬한 욕구인지 모르겠다.

하긴 반려견이라는 명목으로 단단히 끈에 매여 있지만, 보이지 않아도 끈으로 연결되어있지 않은 것이 없지 않은가. 우리는 전생의 좋은 인연이 있어 사람으로 태어나며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오지만, 더없이 편리한 스마트폰의 끈에 바싹 매여 숨을 헐떡인다. 취미로 자청한 끈에 옴짝달싹 매이기도 한다.

혈연 지연 학연의 끈으로 입신출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끈으로 인해 자승자박하고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있다.

부모 자식으로 맺어지는 구천 겁 인연의 끈, 부부로 맺어지는 천생배필의 끈,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맺어지는 시절 인연의 끈 등 무수히도 많다. 아픈 몸에도 가장이라는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날마다 밥벌이 전선에 나서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끈은 장하고도 안쓰럽다.

어려서 손을 붙들고 글씨를 가르쳐준 선친의 칭찬 덕분에 책을 읽는 습관이 일찍 형성되었다. 그 물성의 내면화가 글쓰기를 부추기어 수필이란 끈을 덥석 잡아당겼다.

문학 이란 바다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수필이란 낚싯줄을 첨벙 드리운 것이다. 찌는 무엇을 써야 하고 낚싯대는 어떤 것이 좋은지, 마음의 자세랄지 기다림 같은 것을 가늠해보지 않았다. 독자를 두려워하며 매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심혈을 기울여 고요와 사유로 침잠해야 하는데, 대충 자신을 위한 힐링 차원이었음이다.

공직에 전념해야 한다는 핑계도 있었고 승승장구한다는 헛것에 취해서 다른 낚시꾼들의 흉내만 내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반대급부로 강태공도 되지 못하며 가족들을 외롭게 한 것은 아닌지. 시간이란 요물이 직장의 오래된 끈을 풀어놓으니 이제야 청맹과니를 면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라고 혹자는 말했나 보다.

이곳 청주의 초정에서 제19회 수필의 날 행사가 열렸다. 수필이란 끈으로 맺어진 전국의 수필가가 모이는 대규모 행사다.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두어 번 시간을 앞당기신 원로 수필가 몇 분을 모시고 행사장에 도착했다.

책임을 맡은 회장단의 열정과 충북수필 회원들이 대거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수필이란 끈을 잡고 있으니 안면 있는 분들과 수인사를 하고 활자를 통해 감동을 한 강태공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어려운 처지에도 낚시를 할 수 있도록 낚시터를 마련해준 분들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명찰을 보지 않아도 지면으로 마주한 분을 한눈에 알아보아 인사를 나눌 때는 더없이 행복했다. 나쁜 감정을 쌓지 않고 수필로 풀어 놓은 분들이라 그런지, 따끈하고 매끈하며 잘못된 것은 질끈 감아주는 넉넉한 끈이 보였다.월척을 낚은 강태공들을 몇 번이나 둘러보며 찾았지만 몇 분은 뵐 수 없어 아쉬웠다. 그 짧은 시간에 깊은 대화를 나눌 수야 없겠지만 아직 인연의 끈에 닿지 않음이 조금은 섭섭해졌다.

'어릴 때 감꽃을 실에 꿰어 목에 걸고 다닌 것처럼 연을 맺으려면 밥통, 술통, 목욕통의 통 통 통을 단계적으로 잘해야 한다.'라는 어느 분의 말씀을 생각하니 언감생심이지 싶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때 토론장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끈이 큰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때론 바람이 쓸데없는 잎을 떨구어 열매를 실하게 맺게도 하지만 예상 못 한 바람이라 안타깝고 민망했다.

이영희 수필가
이영희 수필가

장석주 시인의 시처럼 대추 한 알이 저절로 붉어지고 둥글어질 리가 있겠는가. 태풍, 천둥, 벼락을 견딘 고진감래의 열매인 것을.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더라도 잘못된 끈은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누구는 인연이 다할 때까지 무당이 작두를 타듯 인연의 끈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한다. 수필이란 끈으로 스스로 묶었으니 많은 독자가 감동할 수 있는 그런 희망의 끈이 되었으면 좋겠다.

처처 불상 사사 불공(處處 佛像 事事 佛供)의 자세로 정성을 들이지 못하고 업을 지으면서, 강태공처럼 수필의 월척을 낚으려는 것이 과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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